江南 有越州 其屬縣 一曰山陰 二曰 山越 三曰 左越
至文咨帝 明治 十一年 十一月 攻取越州 改署郡縣 曰
松江 會稽 吳城 左越 山越 泉州
十二年 移新羅民 於泉州 以實之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
명치 11년(AD 502) 11월에 월주(越州)를 공격하여 취하였다.
군현의 관청을 고쳐 송강(松江), 회계(會稽), 오성(吳城), 좌월(左越) ,
산월(山越), 천주(泉州) 라고 하였다.
명치12년(AD 503)에 신라인들을 천주(泉州)에 이주시켜 살도록 하였다.
梁 武帝 天監 원년(502년) <太>{동성왕}의 작위를 정동장군으로 올려주었다.
얼마 뒤에 고구려에게 패하여 쇠약해지기를 수년간 지속하더니 南韓땅으로 옮겨갔다.
<梁書>
梁 武帝는 동성왕이 500년에 <백가>에게 살해 된 것을 알지못하고
즉위 원년에 동성왕을 정동장군으로 명한 것으로 보이며
대륙백제는 동성왕 사후 고구려에게 넘어 갔다.
後唐 同光 2년(924년) 11월에 국왕 <金朴英>이 倉部侍郞 <김락金鑠>,
녹사참군(錄事參軍) <金幼卿>을 보내 조공하였다.
2년 정월에 본국 泉州節度使 <王逢規>가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天成 2년(927년) 4월에 신라국 강주(康州)에서 사신 <林彦>을 보내 조공하므로
중흥전에서 만나 보았다.
<冊府元龜>
<金朴英>은 신라의 경명왕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는데
삼국사기에는 왕의 이름이 <承英>으로 되어 있다.
삼국사기에는 경명왕 8년(924년)에
"泉州節度使 <王逢規> 또한 후당에 사자와 토산물을 바쳤다"라고 되어 있고,
경애왕 4년(927년)에
"후당의 명종이 권지강주사(權知康州事)<王逢規>를
회화대장군(懷化大將軍)으로 삼았다.
여름 4월에 지강주사(知康州事)<왕봉규>가 <임언>을 후당에 보내 조공하였다"
라고 되어 있다.
天成 2년(927년) 2월에 신라가 사신으로 보낸 <張芬>등이 조회하였다.
3월 신라국 권지강주사(權知康州事) <왕봉규>를 회화대장군으로 삼았다.
신라국 前 登州都督府 <장희암張希巖>과 신라 登州 지후관(知後官)이며
본국 금주사마(金州司馬) <이언모李彦謨>에게
각각 검교우산기상시(檢校右散騎常侍)의 관직을 주었다.
<五代會要>
산동성 등주에 있던 대륙신라의 유민이 신라 말기에 중앙의 왕권이 약화되면서
지방의 절도사들이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고
자신의 이름으로 복건성 泉州와 광동성 康州에서 조공한 것으로 보인다.
회화(懷化)는 晉나라 때 설치하여
옛 치소가 현 광동성 광주부 번옹현 동남에 있었다고 한다.
대륙백제와 대륙신라는 하북성과 산동성을 고구려에게 내어주고
한반도로로 옮겨오고
고구려는 명치대제 때 중국 대륙의 전 동해안을 관할하게 된다.
<대륙백제, 대륙신라의 한반도 이동과 고구려의 월주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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