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2년 을유 10월(BC35년) (중략)
이해에 漢人 <진탕陳湯>이 <질지郅支{西匈奴선우}>를 강거(康居){西域}에서 죽여서
그 머리를 漢으로 보냈더니,
漢은 <진탕>이 거짓조서로써 제멋대로 죽였다며 공적으로 삼아주지 않았고,
<진탕>은 이를 원망하였다.
<진탕>은 용감하고 칼도 쓸 줄 알아서 나라 바깥에서 공을 세우려고
서역땅으로 가서 <질지>를 속여 말하길
“漢 임금{高宗劉奭}의 명을 받들어 황금과 비단포를 바칩니다.”라 하니,
<질지>가 <진탕>을 곁으로 불러 접견하매,
<진탕>이 칼을 뽑아 그를 죽였고 그의 부하 여럿도 죽였다.
강거국도 평소에 <질지>를 원망하였기에,
모두 <진탕>을 위해 <질지>의 무리를 멸한 것이다.
<질지>가 교만하여 일을 그르치고,
<호한야呼韓邪{東凶奴선우}>가 이에 그 뒤를 이어서
호{匈奴}의 우두머리가 되었더니,
상께서 이를 들으시고 <한소漢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길
“<진탕>에게 상을 주지 않은 것은 어찌 된 일 것 같소?”라 하셨더니,
<한소>가 아뢰길
“이것이 바로 광형독서지론(匡衡讀書之論)이옵니다.
<진탕>이 공이 필요하여 거짓조서로 위험을 무릅쓰고 칼질하여,
인근 나라들에게서 믿음을 잃었으니 큰 나라 체통은 아니었음에,
공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옵니다.”라 답하매,
상께서 이르시길
“漢은 바깥 나라들을 대함에 구구하였었소.
백등성(白登城)에선 치마를 벗었고{呂雉사건},
오손(烏孫){鮮卑一派}>에겐 웃음을 팔았으며{烏孫公主사건},
<섭하涉何>가 패수(浿水) 위쪽에서 도적질함에 요동동부도위로 삼았고,
{涉何의 衛滿朝鮮裨王살해사건}
<부개자傅介子>가 루란(樓蘭)에서 칼질했다가 공적을 몰수당하였소.
{정선국(鄯善國) 初王 <위도기尉屠耆>의 兄인 누란국왕(樓蘭國王) <안귀安歸>를
BC77년에 연회석에서 殺害한 事件}
진탕의 소행은 2적지계(二賊之計)에서 나온 것이었소.
설혹 곡해하였다면 바로잡아야겠지만, 전례들이 저와 같았으니,
어찌 독서지론을 언급할 수 있겠소?
漢나라 사람들이 한 일들 모두는 간서지계(奸鼠之計)에 불과한데,
진탕으로 하여금 호걸이 되게 하였으니,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소?”라 하셨다.
얼마 있지 않아서 진탕이 결국 논공행상되었으며,
漢이 하는 짓거리들은 이와 같았다
{추모는 漢의 행동이 쥐새끼 같은 짓이라고 질타하고 있다.}
※ 참고
광형독서지론(匡衡讀書之論) : 가난한 <광형匡衡>이 옆집의 벽을 뚫어서 새어나온
불빛을 훔쳐서 책을 읽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
패수(浿水) : 고조선의 왕검성(滿城)을 흐르는 강, 당하(當河), 산수(汕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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