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明>九年壬辰 五月...

 

漢罷中書宦官 始置尙書五人

 

常侍尙書 主丞相御史事

 

二千石尙書 主刺使二千石事

 

主客尙書 主外國事

 

三公曹尙書 主断獄事

 

戶曹尙書 主庻人上書事

 

上曰 庻人上書 則可知下情矣 其令主民 特設申鼓 以聞民言

 

동명 9년 (BC 29) 5월 (중략)

 

한(漢)이 중서환관을 없애고 상서(尙書) 다섯 명을 처음으로 두었다.

 

상시상서(常侍尙書)는 승상 어사의 일을 주관하고,

2천석상서(二千石尙書)는 자사(刺使)와 2천석(太守)의 일을 주관하며,

주객상서(主客尙書)는 외국의 일을 주관하고,

3공조상서(三公曹尙書)는 중범죄를 주관하며,

호조상서(戶曹尙書)는 서인상서(庻人上書)의 일을 주관하게 하였다. 

 

상께서 말하기를 “서민들이 글을 올려야 아랫사람들의 사정을 알 수 있는 것이니,

주민大로 하여금 특별히 신고(申鼓)를 설치하게 하여 백성들의 말을 듣게 하라!”

 

 

우리가 알고있는 신문고는 송나라의 등문고(登聞鼓)제도를 모방하여,

조선 태종원년(1401년)에 백성들의 억울한 사실을 말할 수 있게 하기위해

대궐 밖 문루 위에 달았던 북으로 등문고라 하다가

그해 8월 신문고(申聞鼓)로 명칭을 바꾸었다한다.

 

임금이 직접 억울한 사연을 듣고 처리하도록 하였으니

그 효과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는 없으나

백성을 위하는 마음에서 시행하였다는 그 자체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옛날 고구려의 시조 추모가 신고(申鼓)를 설치하여

백성의 억울한 사정을 직접 듣고자 하였다하니

이 얼마나 위대한 민족인가?

 

위대한 조상을 둔 천손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