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明>十六年己亥七月, 與<安平>王<鍾离>戦于<﨎山>,大破之. <离>,奔入<安平>,

 

固守不出. 粮盡而退, 掠其生口七千人為奴婢, 多美女才男. <鍾离>遣使于<鄭宋>請和,

 

上命<宋>遣其使于<漢素>,約歲貢牛馬各千頭‧ 彩段二千疋‧

 

黃金二千斤‧ 薬七十種‧ 豆粱三万石, 稱臣‧ 納女‧ 生口男三百人‧ 女七百人為式.

 

<﨎山之戦>「右将軍」<宝燕>身被十創而卒, 囊尸而来. 上, 與其妻<克>氏, 撫尸而哭曰

 

“汝乃吾<曹叅>也,當血食千秋.” <克>氏,<再思>女也. 時年二十五,

 

只有一子一女而幼未能授爵故, 納<克>氏于後宮為夫人.

 

<燕>, 學釼于上,以釼術為當世之宗,

 

大戦十余次,身被数十槍, 竟死於其術, 可謂死於道者也. 善攀者墜善泳者沈之謂也.

 

<暖>公主生<觧晉>子<焄>. 上, 與<羊花宮> ,如公主宮撫慰賞賜甚多

 

 

 

동명16년 기해(BC22년) 7월,

 

 

안평(安平)왕 <종리鍾离>와 쌍산(雙山)에서 싸워서 그를 대파하였더니,

 

<종리>는 안평성으로 도망해 들어가서 굳게 지키며 나오지 않았다.

 

 

군량이 다하여서 물러났으며, 그곳의 생구 7천인을 잡아다가 노비로 삼았는데,

 

미녀와 재주 많은 남자들이 많았다.

 

 

<종리>가 사신을 <정송鄭宋>에게 보내와서 화친을 청하였기에,

 

상께서 <정송>에게 명하시어 그 사신을 <한소漢素>에게로 보내게 하셨더니,

 

약속을 받아내길, 해마다 소와 말 각각 천 두, 채단 3천 필, 황금 2천 근, 약재 70종,

 

콩과 기장 3만 석을 조공하고,

 

칭신(稱臣)하며 딸과 남자생구 3백인 및 여자생구 7백인을 바치도록 규정하였다. 

 

 

쌍산전쟁(雙山戰爭)에서 右將軍 <보연宝燕>이 몸에 열 군데의 부상을 입고 죽어서,

 

시신을 주머니에 넣어서 돌아왔더니,

 

상께서 그의 처 <극克>씨와 함께 시신을 어루만지며 곡하고 이르시길

 

 

“그댄 나의 <조참曹參>이었으니,

 

마땅히 나라에서 천년이 되도록 제사가 끊이지 않을 것이오.”라 하셨다.

 

 

<극>씨는 <재사再思>의 딸로 이때 나이 스물다섯이었으며,

 

단지 아들 하나와 딸 하나가 있었으나 아직 어려서 능히 작위를 줄 수 없으셨더니,

 

<극>씨를 후궁으로 들여 부인으로 삼으셨다.

 

 

<보연>은 칼 쓰기를 상께 배웠으며, 검술로는 당대제일이었으나,

 

큰 전쟁 10여 차례에 몸에 수십의 상처가 생겨서, 끝내는 검술로 죽었더니,

 

도(道)를 위해 죽었다 할 만하였다.

 

 

잘 오르는 이가 떨어지고 헤엄 잘 치는 이가  빠져죽는다 함이었다. 

 

 

<난>공주가 <해진觧晉>의 아들 <훈焄>을 낳았다.

 

상께서 <양화궁>과 더불어 공주의 궁으로 가시어 토닥여서 위로하셨으며

 

상(賞)으로 하사하신 것들도 심히 많았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