八月 扶尉厭伐九里城拔之 置句麗縣入紫蒙城

 

紫蒙王西川以其妻婁洽乞命 尉厭遂通婁洽而妾之

 

西川又以其雀舌来乞命 尉厭亦取之

 

約歲貢牛馬二千匹,薬草二十種,虎皮七十張 而退軍湖海 <추모경>

 

 

 

동명16년(BC22)

 

 

8월, <부위염扶尉厭>이 구리성(九里城)을 정벌하여 빼앗아

 

구려현(句麗縣)을 설치하고서 자몽성(紫蒙城)으로 들어갔다.

 

 

자몽왕 <서천西川>이 자기 처 <누흡婁洽>으로 목숨을 구걸하기에

 

부위염이 마침내 누흡과 상통하여 첩을 삼았다.

 

 

서천이 또 <작설雀舌>을 보내 목숨을 구걸하기에 부위염이 그녀도 취하였다.

 

 

세공으로 소와 말 2천 필, 약초 20종, 호피 70장을 약속하여

 

군사를 호해(湖海)로 퇴각시켰다.

 

 

 

자몽(紫蒙)국은 燕 모용씨의 터전이며 부여의 제후국 중 하나이다.

 

 

이 자몽이라는 지역에 바로 구리(九里) 그리고 구려(句麗)가 있었다.

 

 

 

 

三十三年 甲戌 ......

 

八月 烏伊領兵二萬 伐涉臣拔勾麗城 虜涉臣而皈

 

紫蒙十二國悉平 <고구려 사초> 

 

 

 

유리광명 33년(AD14)

 

 

8월, <오이烏伊>가 군사 이 만을 거느리고 <섭신涉臣>을 쳐 구려성(勾麗城)을 빼앗고

 

<섭신涉臣>을 사로잡아 돌아왔다. 

 

 

자몽(紫蒙) 열 두 나라가 모두 평정되었다.

 

 

 

원래 <섭신涉臣>은 선비왕이었으나 이즈음 자몽(紫蒙)을 장악하고 있었다.

 

 

광명대제 11년(BC9)에 <섭신涉臣>이 고구려에 반란을 일으켰고

 

이에 부분노가 그를 치자 남으로 달아나 구려성(勾麗城)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이 구려(勾麗)는 고구려와는 별개로 자몽에 인근한 소국이다.

 

 

신(新)나라의 왕망이라는 자가 고구려와 구려를 혼동하여

 

마치 자신이 고구려를 정복한 것처럼 떠벌였지만

 

그가 정복한 것은 자그마한 구려(勾麗)였던 것이다.

 

 

 

 

高句驪 在遼東之東千里 南與朝鮮濊貊 東與沃沮 北與夫餘接

 

 

고구려는 요동의 동쪽 천리에 있다.

 

남으로는 조선과 예맥, 동으로는 옥저, 북으로는 부여와 접했다.

 

 

 

句驪一名貊(耳) 有別種 依小水為居 因名曰小水貊

 

出好弓 所謂貊弓是也   - <後漢書 卷八十五 列傳第七十五 東夷>

 

 

 

구려는 일명 맥(이)이라한다.

 

별종이 있는데 소수에 의지하여 사는 까닭에 소수맥이라 한다.

 

좋은 활을 만들어내는데 소위 맥궁이라는 것이 이것이다.

 

 

후한서 동이열전은 분명히 고구려와 구려를 구분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에서는 구려가 바로 소수맥이라 하였다.

 

 

구려선비족 모용씨의 터전인 자몽과 이웃하고 있는 것이.

 

소수(小水)는 압록강 지류인 동가강(佟佳江)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다.

 

 

 

 

<자몽과 안평>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