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훤萱>황후의 휘는 <훤화萱花>이니, 성모(聖母)의 여동생이라.

 

 

성모가 <추모>를 임신하매, 후의 나이 열 셋으로 역시 수제(漱帝)의 승은을 입어서,

 

수제께서 죽음을 앞두고 명하기를 <추모>의 처가 되라 하셨으므로,

 

<추모>가 태어나매 <훤화>가 받아내어 일어나고 눕는 것과 먹고 자는 것을

 

같이 한 지 10년을 하루같이 하였더니.

 

 

을해년{BC46} 춘2월에 <훤화>가 <추모>를 시중하여

 

함께 잠자리에 들기를 여느 날 같이 하였는데,

 

<추모>가 한밤에 자다가 일어나사 <훤화>를 끌어안았고,

 

<훤화>는 마땅히 남자가 되었음이라 여기고서 운우 흥하기를 비롯하였더니,

 

<훤화>의 기쁨은 불가형언이라.

 

 

이로부터 이윽고 원앙이 되어 곁을 떠난 적이 없었더니,

 

남하하던 시절에 먼저 갈사국(曷思國) <가숙加菽>공의 처소로 왕림하여

 

상이 오시기를 기다렸더니. <가숙>공은 后의 정부이었더라.

 

 

<추모>가 물이 불어나서 건너기가 어렵기에 떼어놓고 가려 하였더니,

 

<훤>后가 물속으로 몸을 던져 희생이 되어 신에게 제사하려 하였더니,

 

큰 거북들이 떠올라서 일행이 건넜더라.

 

 

모둔(毛屯)에 다다르자 <추모>께서 <중실仲室>을 아끼고

 

<을전乙旃>에 승은을 내렸어도 <훤화>는 투기 한번 하지 않았고,

 

<추모>에게 권하여서 <소>후를 거두고 <졸본>을 합쳤으니 그 공이 컸음이고,

 

<추모>께서 호색하사 근신들의 처와 통정함이 많았던 까닭에

 

다른 후들은 기뻐하지 않았으나,

 

后 홀로 그들을 환대하며 다른 이들을 용납하여 덕을 베푼 고로

 

<추모>께서 후를 최고로 사랑하였고,

 

 

또한 최다의 방사를 베풀었어도 총애를 믿고 방자히 한 적도 없었으며

 

항상 근신하고 자신을 지켰으며,

 

여인의 일{길쌈 등}에 능하였고 <옥인屋因>과 <양성羊聖>의 덕이 있음이었더니,

 

상께서는 항상 여러 후와 비 들에게 이르시길

 

 

“임금의 처가 된 이들은 응당 내 처 <훤>과 같아야 한다."고 하셨으며

 

 

한 번도 后의 일로 얼굴을 붉힌 일이 없었고,

 

항상 부지런히 하고 온화함으로 서로를 대하며

 

입가에 웃음 짓길 잊어버리지 않으셨으며, 자녀들을 부드럽게 낳았더니.

 

<훤>태자・ <원양元陽>공주・ <고양高洋>공주・ <권>태자・ <억>태자 등

 

모두가 어질었고 효도하였으며 우애가 좋아서 다른 이들과 공을 다투지 않았더라.

 

 

기해년{BC22} 3월에 병이 들어 상의 무릎위에서 죽을 때,

 

상이 하고 싶은 말을 물어도, 후는 이르기를

 

 

“폐하, 방사를 많이 하지 마시고, 잡녀들을 거둬들이지 마세요.

 

그러면 첩은 죽어서도 역시 안심할 것입니다."라 하였더니,

 

 

상이 눈물지으며 이르시길

 

 

“나를 사랑하심이 이러하셨으니, 그대는 처이자 어머니이셨소."라 하셨으며,

 

죽은 후엔 방부액 등에 침지하여 놓고서 때때로 갈아 넣어주셨더니.

 

<추모>가 죽으매 유명으로 또한 <추모>의 재궁에 시신을 넣었는데,

 

안색은 생시와 같았더라. 춘추 50{BC71年生}이었고,

 

상을 섬기길 25년에 천후자리엔 19년을 있었으며,

 

딸 넷과 아들 셋을 낳았더라.

 

<추모경 후비열전>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