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18년(BC20년)

 

 

<추모>는 <소서노>를 비롯한 졸본세력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미 정윤으로 삼았던

 

<두절>태자를 폐하고 동부여에서 돌아온 <유리類利>를 정윤(正胤)으로 삼고자 한다.

 

 

<소서노>는 <추모>의 이 같은 행동에 심한 배신감을 느끼며 우양(牛壤)으로 가버린다.

 

 

소서노가 서도(西都)에서 그녀의 고향인 졸본 흘승골의 우양(牛壤)으로 간 것이다. 

 

 

추모는 군신들을 모아놓고 동쪽과 서쪽에 깃대를 세워놓은 뒤

 

<두절>을 지원하는 자는 동쪽에 <유리>를 지원하는 자는 서쪽에라고 한다.

 

 

<소서노>를 지원하는 졸본세력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두절>태자는 스스로 <유리>의 깃발인 서쪽에 서서

 

장자의 계승은 지당한 일이라 아뢰며 정윤자리를 유리에게 양보하니

 

그를 지원하는 군신들도 <유리>를 지원하는 서쪽깃대에 서게 된다.

 

 

<추모>는 <두절>태자를 한 나라의 제왕이 될 동량이라 칭찬하며

 

<두절>이 남쪽 땅을 지킬 수 있게 <유리>에게 배려하라 이른다.

 

 

이듬해 동명19년(BC19년) 1월 <추모>는 <유리>태자를 정윤으로 삼았고 

 

3월에 <두절>태자를 환나패자(桓那沛者)로 삼으며

 

<두절>태자를 <온조溫祚>라 바꿔 부르게 하는 데

 

<온조>라는 이름은 <두절>태자가 <유리>태자를 위하여 정윤의 자리를 양보하고

 

앞으로도 <유리>태자를 잘 보필하라는 뜻으로 <온조溫祚>로 개명하였다.

 

 

이때 유리는 22세, 온조는 26세이었다.

 

 

<고구려의 서도(西都), 동도(東都) 및 졸본의 서성(西城)과 동성(東城)>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