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대제 3년 갑진(BC17년)

 

1월, 국중 (國中)을 나누어 五部로 삼았다.

 

순노(順奴)와 발노(奴)를 <비류沸流>에게 주어 다스리게 하였고, 

 

미추홀(彌鄒忽)에 도읍하였다.

 

 

관노(奴)와 계루(桂婁)를 온조(溫祚)에게 주어 다스리게 하였고, 

 

우양(牛壤)에 도읍하였다.

 

 

연노(涓奴)는 상이 다스렸다.

 

黃龍, 卑離, 荇人, 의 여러 국사(國事)를 겸하여 총괄하였고,

 

五部는 패자(沛者), 우태(于台), 사자(使者), 평자(評者)등의 직책을 두었다.

 

 

 

5월, 태후(太后)와 함께 해산(海山)으로 가서, 신선(神仙)을 하였다.

 

황후(皇后) 및 <온溫>公主, <馬>公主, <再思>公主는 그를 따랐다.

 

촉산(山)과 염산(鹽山)을 거쳐 돌아왔다.

 

東明神宮이 완성되었다.

 

 

 

7월, 송양(松讓)의 딸을 妃로 삼았다.

 

골천(川) 량곡(凉谷)의 동서에 리궁(離宮)을 지었다.

 

皇后와 溫公主와 함께 그곳에서 거주하였다.

 

 

한남왕(汗南王) <온조溫祚>가 입조하여, 우양(牛壤)협소하므로,

 

위나성(尉那城)으로 도읍을 옮기를 청하였다. 이를 허락하였다.

 

 

상은 황후에게 말하길,

 

"<온조溫祚>는 비록 17살이지만,  주사(奏事)가 명백하여, 비류(沸流)보다 낫소.

 

남방(南方)은 걱정이 없구려." 라고 하였다.

 

 

황후가 말하길,

 

 "<비류沸流>는 어려서 질병이 많아 교회(敎誨)를 받지 못했으므로

 

도선(徒善)한 것 뿐입니다. 온조는 어려서부터 용장(勇壯)하였고,

 

마려(馬黎)가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이처럼 일찍히 폐하의 한쪽 팔이 되었습니다."

 

라고 하였다.

 

 

상이 말하길

 

"어찌 단지 한쪽 팔뿐인가? 그가 나이고, 내가 그이로다" 라고 하였다.

 

 

황후는 크게 기뻐하며 말하길

 

"어찌 이같은 성은을 생각하리오!" 라고 하였다.

 

 

<온조溫祚>가 귀국하니, 황후는 한남(汗南)으로 가고 싶어 말하길

 

"첩의 용모는 이미 쇠하여 부끄러운 노빈(老牝)이 되었으니,

 

한남으로 가서 지독(犢)하기를 청합니다"

 

 

상은 그만두라고 말하길

 

"선제께서는 짐에게 경을 남기셨소.

 

순장을 금했던 것은 나라의 근본을 단단히 하고자 함이였소.

 

경이 만약 한남(汗南)으로 간다면, 짐은 누구와 함께 나라를 다스리며,

 

선제(先帝)를 추념(追念)하겠소. 짐을 외롭게 하지 말고,

 

예전처럼 나라를 숭상하면서 백성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 주시오" 라고 하였다.

 

황후는 이내 기뻐하며 그만두었다.

 

 

10월,  <溫>公主가 난산(難産)으로 죽었다. 나이 20살이였다.

 

상은 애통해 하며 2일동안 감식하였다.

 

 

12월, 아이후(阿爾后)는 딸 <玄>을 낳았다.

 

 

※ 참고

 

주사(奏事) : 상소를 올리는 일

 

교회(敎誨) : 가르침

 

도선(徒善) : 착하기만 하고 융통성이 없음

 

노빈(老牝) : 늙은 암소

 

지독(犢) : 어미소가 송아지를 핥는 것을 말한다.

 

 

 

 

<고구려 5부>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