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十三年甲子,二月,以<解明>爲東宮.  算十七. 母<松>后夢鸞乘日而出. 性英明好勇,

形 亦多肖. 上故以皇后女<珍>公主妻之, 大赦國中. <松>后生<無恤>于<銀川>新宮.

朱光炤室,故名宮曰<朱留>, 白鶴盤回岺,上故名岺曰<鶴岺>. <鵲>太子浮海入<新羅>.

<고구려사초 광명대제기>

 

 

광명대제 23년(AD4)갑자,

 

2월, <해명解明 禾氏生琉璃子 BC13-18>이 동궁이 되었다. 보령 열일곱이었다.

 

 

모친 <송松>后가 란새가 날아오르고 해가 뜨는 꿈을 꾸었었다.

 

 

성품은 영명하고 씩씩함을 좋아하고, 얼굴도 닮은 데가 많았다.

 

 

상은 그리하여 황후의 딸인 <진珍 召西奴産琉璃女 BC18-?>공주를

 

(해명의) 처로 삼고 나라 안의 죄수들을 크게 풀어주었다.

 

 

<송松>后는 은천(銀川) 신궁에서 <무휼無恤 4-64>을 낳았다.

 

 

붉은 빛이 실내를 밝혀주었다 하여 궁의 이름을 주유(朱留)라 불렀고,

 

흰 학이 고개를 선회하였다 하여 상이 고개 이름을 학령(鶴岺)이라 불렀다.

 

 

<작鵲 BC19-?>태자는 <신라>로 흘러들어갔다.

 

 

二十三年甲子 二月以解明太子爲正胤 以珍公主爲妃置東宮, 僚及領地衛軍大赦國內,

上與皇后率東宮及妃如溫湯 宴卒本戚臣沸流戚臣三十人.

松后生無恤太子于朱留宮有鶴盤回岺上.

<고구려사략 유류기>

 

 

유류왕 23년(AD4)갑자년

 

2월 해명태자를 정윤(후계자)으로 삼고

 

<진珍>공주를 妃로 삼아 동궁에 두었는데

 

(졸본계열과) 동료가 되고 (졸본의) 영지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였다.

 

 

국내에 있는 죄수를 크게 사면했다.

 

 

왕과 황후가 동궁(해명태자)과 동궁비(진공주)를 데리고 온탕에 가서

 

졸본척신과 비류척신 30명과 잔치를 열었다.

 

 

송후가 학반회령 꼭대기에 있는 주류궁에서 무휼태자를 낳았다.

 

 

 

고구려사초에서는 해명을 송후의 아들로 기록하였으나,

고구려사략에서는 그 기록이 없다.

 

해명과 해술은 禾妃의 아들이다.

 

유리는 해명에게 소서노가 낳은 진공주를 동궁비로 책봉하여 잔치를 열고

졸본세력의 불만을 잠재우고자 한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