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十七年戊子,八月, 太后崩,春秋八十五,葬於<豆谷>東原. 十月,上與皇后崩,于豆谷離宮.

上春秋六十八,皇后八十三. 皆葬于太后陵內. 東宮卽位於<豆谷>離宮.

<고구려사초 광명대제기>

 

元年戊子, 十一月, 改元<大武>. 以<多勿候><松義>為太輔․主民, 以母<松>后為太后, 以妃<珍>公主為皇后. 如<龍山>, 告卽位. 時, 年二十五.
<고구려사초 대무신제기>

 

 

광명대제47년(AD28)무자,

 

8월, 태후(예태후)>가 죽었다. 춘추 85세였고 두곡(豆谷) 동원(東原)에 장사했다.

 

10월, 상과 황후(소서노)두곡(豆谷) 이궁(離宮)에서 죽었다.

 

상은 춘추 68세였고, 황후는 춘추 83세였다.

 

둘 다 태후릉 경내에 장사했다. 동궁이 <두곡>의 이궁에서 즉위하였다.

 

 

원년{AD28}무자,

 

11월, 연호를 대무(大武)로 고쳤다.

 

다물후(多勿候)인 <송의松義>를 태보 겸 주민대가로 삼고,

 

모친인 <송松>후를 태후로 올렸으며, 비(妃)였던 <진珍>공주를 황후로 올렸다.

 

<용산{동명릉}>에 가서 즉위하였음을 고하였다. 이해에 나이 25세였다.

 

 

 

47년(A.D28)무자년 

 

8월 (예)태후가 춘추 85세로 죽었다, 두곡 동원(동쪽 평원)에 장사를 지냈다.

 

10월 황후와 왕이 태후릉을 찾아뵙고 두곡이궁으로 돌아왔다.

 

왕이 먼저 죽고 황후가 따라 죽었는데 예태후릉 경내에 장사를 지냈다.

 

왕의 춘추 68세였고, 황후는 춘추 83세였다. 동궁이 보위를 물려받아 즉위하였다.

<고구려사략 유류기>

 

 

 

온조46년(28년) 봄 2월에 왕이 돌아갔다.

 

원년 다루왕 (多婁王)은 온조왕의 맏아들이다. 그는 도량이 넓고 명망이 높았다.

 

온조왕 재위 28년에 태자가 되었고,

 

46년에 왕이 사망하자,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유리>는 AD18년에 죽었고, <소서노>는 BC6년에 죽은 것을

태후 <호예>가 죽은 해에 두 사람의 죽음을 끼워 넣어 <온조>의 반정을 은폐하였다.

 

<소서노>가 <유리>의 황후로 <유리>와 같이 죽었다는 것은

상식적인 생각으로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 해 <온조>가 죽고 고구려는 태자 <무휼>이 즉위하니 25세였고

백제는 <다루>가 한남왕으로 즉위하니 27세였다.

 

고구려사초는 <해명>이 AD 8년에 여진 동원에서 자결하였고

<해술>은 AD 18년에 여진에서 익사하였다고 하나

18년 온조반정 때 <유리>와 <오이>. <해명>과 <해술>이 함께 죽은 것으로 보인다.

 

 

'고대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89. 柵南之戰  (0) 2014.08.05
88. 王調의 亂과 낙랑 영동7현 수복  (0) 2014.08.05
86. 曷思太后  (0) 2014.08.05
85. 溫祚 龍山에 東明神廟를 세우다  (0) 2014.08.04
84. 溫祚 東都에서 伯濟王으로 즉위하다  (0) 2014.08.04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