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十八年乙卯,二月,築<盖馬><河城><丘利><高顯><南口><紫蒙><句麗><車蘭>

<河陽><西安平>等十城以備<漢>及<鮮卑>.

<고구려사초 대무신제기>

 

대무신제28년(AD55)을묘,

2월, 개마(盖馬), 하성(河城), 구리(丘利), 고현(高顯), 남구(南口), 자몽(紫蒙),

구려(句麗), 거란(車蘭), 하양(河陽), 서안평(西安平)등 10성을 쌓아

<한>과 <선비>에 대비하였다.

 

 

후한은 건원30년(54년)에 선비와 고구려 사이를 이간시킨다.

 

이에 위기를 느낀 고구려가 AD55-57년에 서부지역에 10성을 쌓아 방위력을 강화하자

후한은 다음해 AD58년에 선비 추장 <편하偏何>를 재물로 꾀어 고구려에 우호적인

어양(漁陽), 상곡(上谷) 방면의 적산(赤山) 오환(烏桓)을 공격하게 하여

오환(烏桓)의 추장 <흠지분歆志賁>을 살해하고,

또 선비(鮮卑) 대인(大人) <어구분於仇賁>, <만두滿頭> 등을 꾀어

선비(鮮卑)를 장성(長城) 외곽(外廓)으로 이동시키고 한나라에 귀부(歸附)시켰다.

 

이 같은 방법으로 후한(後漢)은 AD48년에

고구려와 부여(夫餘) 사이를 갈라놓은데 이어

AD54년에 고구려와 선비 사이를 갈라놓고,

AD58년에 상곡(上谷), 어양(漁陽), 우북평(右北平) 등지를 수복하였으며,

고구려에 우호적인 오환(烏桓)을 약화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이로 인하여 고구려는 AD49년에 점령한

상곡(上谷), 어양(漁陽), 우북평(右北平) 등지를 AD 58년에 상실하였고,

이때부터 고구려는 후한(後漢), 부여(夫餘), 선비(鮮卑)에 포위되어 고립되었다.

 

AD 55년에 대무신제가 쌓은 고구려의 10은 후한(後漢), 부여(夫餘), 선비(鮮卑)와의

서로 뺏고 뺏기는 격전장이 된다.

 

후한(後漢)은 AD 104년 경에는 섬서성 요동군을  고구려의 서안평성, 하양성, 남구성

일대에 복치(置)하여 고구려와 요동의 패권을 두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린다.

 

 

<대무신제가 쌓은 10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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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