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호동의 죽음

고대사 2014. 8. 10. 10:15

 

 

 

三十三年庚申,十一月,<好童>伏劒而死.<好童>顔色美好,<烏>皇后愛而欲狎之不得反讒

 

 

于上曰"<好童>無禮.”上不肯罪之,后乃聲言于外,<好童>不自釋曰"我若釋之,顯母之惡而

 

 

 

貽父之憂”遂自殺.

 

 

<고구려사초 대무신제기>

  

 

 

대무신제33년 경신(60), 11월, <호동好童>이 칼에 엎어져 죽었다.

 

<호동>은 안색이 고와서 호감을 샀더니,

<오烏>황후가 <호동>을 탐내어 희롱하고 싶었으나 그리 되지 아니하여 도리어 상께

 

“<호동>이 무례하다.”고 참소하였으나,

 

상이 <호동>을 벌하지 않으매,

이에 황후가 언성을 밖으로 내었더니, <호동>이 자신을 석명하지도 않고

 

“내가 밝히면 어머니(烏后; 好童생모는 曷思后)의 잘못이 드러나고

아버님이 근심하실까 걱정된다.”면서 자살한 것이다.

 

삼국사 고구려본기에는 호동의 사망 시 대무신왕의 나이 겨우 29세에 불과하다.

 

고구려사초 기록에는 대무신왕이 57세이고 호동의 나이는 28세이므로,

고구려사초 기록이 합당하다 하겠다.

 

호동(好童)태자는 갈사(曷思)태후의 소생이다.

 

갈사후는 처음에 명왕(明王)비가 되어 재사(再思)대왕과 딸을 낳았다.

 

명왕이 죽자 나이가 어리고 아름다워 대무신왕이 다시 받아들여 후(后)로 삼았으며,

호동태자를 낳았는데 또한 미려(美麗, 아름답고 고움)하고 사람들과 사귐에 능하였다.

 

왕이 호동을 총애하였다.

 

무당이 말하기를

 

“해명의 2세다. 아름다움과 용감함으로 오만하지 마라.

외국으로 나가 돌아다니면 반드시 나라를 얻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호동이 이에 옥저(沃沮)로 나가서 낙랑(樂浪)왕녀와 통하여

그 북과 나팔을 깨뜨리고 낙랑을 습격하였다.

 

왕이 그 공을 기뻐하며 태자로 삼고자 하였다.

 

오후(烏后)가 이에 왕에게 참언하여 말하기를

 

“호동이 나를 간통하고 나를 유혹하여 말하기를

‘즉위하면 곧 뒷날 후(后)로 세우겠다.’라고 하니 배우자의 일을 감당하기 두렵습니다.”

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네가 호동을 죽이고자 하여 참언을 하는 것이로구나.”라고 하였다.

 

오후가 울면서 말하기를

 

“부왕(夫王)이 나를 믿지 않으니 나는 마땅히 목을 매어 마음을 밝히겠다.”라고 하며,

이에 자결하려 하였다.

 

왕이 이에 호동을 불러 물어 말하기를

 

“네가 후(后)를 간통하고자 한다면 부자사이에 어찌 아까움이 있겠느냐?”라고 하였다.

 

호동이 그 이유를 알지 못하여, 후(后)를 간통하고자 하는 뜻이 없음을 고하였다.

 

곧 오씨가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칼을 옆에 차고 나가며 말하기를

 

“네가 나의 침소로 와서 나를 다그친 적이 없다는 것이로구나.

 

너는 내가 왕이 되면 너를 다시 후로 세우겠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너는 낙랑공주와 혼인하기로 약속하였으나 그녀를 죽였는데,

또 나와 합하기로 약속하여 놓고 나를 죽이려 하는구나.”라고 하였다.

 

호동이 변명을 하지 않고 이에 탄식하여 말하기를

 

“내가 만약 변명하면 후(后)가 죽게 될 것이고, 동생들 또한 불안해질 것이다.

 

아버지로 하여금 베게머리에서 한숨을 쉬게 할 것이니

내가 죽고 후(后)를 지킴만 못하다.”라고 하였다.

 

이에 칼 위에 엎드려 죽었다.

 

재사(再思)대왕이 시신을 어루만지며 탄식하며 말하기를

 

“부왕(父王, 아바마마)이 항상 말하기를 첫째는 말(馬)이요, 둘째는 매(鷹)요,

셋째는 색(色)이라 하여 우리 형제를 경계하고, 여색을 다투는 것을 금하였는데,

지금 네가 여색으로 죽는구나.”라고 하였다.

 

오씨가 그 말을 듣고 기뻐하지 아니하며, 재사 또한 다른 뜻이 있다고 참언하였다.

 

왕이 듣지 않고, 호동을 태자의 예로 장사를 지냈다.

<본기신편열전>

 

 

본기신편열전에서 갈사후가 유리왕의 妃로 再思를 낳았다는 것은 잘 못된 기록이다.

 

유리왕(BC40-18)의 妃 갈사후(BC16-36)는 해소(BC43-47)의 딸인 갈사후를 말하고,

무휼(4-64)의 妃 갈사후(20-96)는  해소의 손자인 산해의 딸로

이 갈사후가 호동(33-60)과 再思(48-121)를 낳았던 것이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