帝, 諱<解憂>, <大武神帝>之子也. 母, 曰<烏>太后, <烏伊>子<婁>之女也. 容皃美麗,
而能騎射, 善諧謣阿諛, 故<武帝>愛之, 以爲正胤. 旣得志, 多亂後宮, 而性頗殘忍.
<武帝>, 臨崩, 命<閔中>令行<太甲>故事, 待其改過而傳位, 又令<烏>后事<閔中>.
而完其事未幾, <閔中>見其改過之跡, 而欲讓位. <烏>后力止之, 而未得. 常謂左右曰;
“吾, 以后故未副兄志.” 夜不能寢, 疾作而崩. 以遺命立帝. <烏>后謂帝曰;
“汝父欲立汝, 吾力止之者, 猶有未信故也. 今, 以遺命, 立汝. 汝, 其體汝二父之心,
而無失天子之德.” 帝, 素有孝行故唯. 唯而卽位.
제의 휘는 <해우>이고, <대무신제>의 아들이다.
모친은 <오>태후로 <오이>의 아들인 <오루>의 딸이었다.
용모가 미려하고 말 탄 채 활쏘기를 잘 하고, 허튼소리와 빌붙기도 잘하니,
<무제>가 그{<모본>}를 귀여워하여 정윤{동궁이 될 수 있는 친자식}으로 삼았더니,
의기양양하여 후궁들과 어지러이 놀아났고, 성품도 치우침이 있고 잔인하였다.
<무제{<대무신제>}>는 죽음을 앞두고서,
<태갑>의 옛일{『이주지사』}을 <민중>에게 시키면서,
{<해우>가} 개관천선하기를 기다렸다가
{<민중>이 <해우>에게} 전위하여 주라고 하였다.
또한 <오>후에게는 <민중>을 받들라고 하였다.
<해우>가 온전히 개과천선하기도 이전에,
<민중>이 <해우>가 개과한 흔적을 보이는 것으로 알고 양위하려고 하자,
<오>후가 이를 힘껏 말려서 그럴 수 없었다.
{이리하여 <민중>은} 오히려 좌우에게
“나는 후{<오>황후} 때문에 형{<대무신제>}의 뜻{<해우>에게 보위를 물려주는 것}
을 이룰 수 없다.”고 하더니만, 밤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다가 병이 들어 죽었다.
유명에 따라 {<해우>가} 제위에 섰다.
<오>후가 제{<모본>}에게 이르길;
“네 아버지께서는 너를 보위에 세우려 하셨고,
나는 너를 믿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말렸다.
이제 유명에 따라 너를 보위에 세운다. 너는,
네 두 아버님{<대무신제>와 <민중제>}의 뜻을 깨달아,
천자가 갖추어야 할 덕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라 하였다.
제{<모본>}는 평소에 효행을 {하는 체} 하였고,
오직 효행을 {하는 체} 하였다는 까닭만으로 즉위하였다.
대무신제의 正妃 烏氏(15~94)는 오랫동안 이이를 낳지 못했다.
새로 입궐한 후궁은 갈사왕 해루의 손녀 갈사후(20-96)였는데 입궐한지 얼마 안되어
아들을 낳으니 대무신제는 득남한 기쁨으로 이름을 <호동好童 33-60)이라 지었다.
제1황후 烏氏가 아들을 낳았는데
대무신제는 그 아들 이름을 <해우解憂 40-73>라 지었다.
황후 오씨의 모함으로 자결한 호동의 뒤를 이어
AD68년 5월 드디어 해우가 천제의 자리에 올랐다.
고구려 5대 모본제慕本帝(AD40-73 재위 68-72)이다.
모본이 즉위하자 갈사후와 모본간에 치열한 권력투쟁이 시작된다.
갈사후는 <두로杜魯>를 이용하여 모본제를 살해하고 마침내 두로를 제거하여
그녀의 아들 <재사再思(48~121)>가 73년에 즉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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