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21년(24년), 가을 9월, 메뚜기 떼가 나타났다. 왕이 별세하였다.
사릉원에 장사지냈다.
유리 이사금이 왕위에 올랐다. 그는 남해의 태자이다.
어머니는 운제부인이며, 왕비는 일지 갈문왕의 딸이다.
[혹은 왕비의 성은 박씨이며, 허루왕의 딸이라고도 한다.]
애초에 남해가 사망했을 때, 유리가 당연히 왕위에 올라야 하는데,
유리는 대보 탈해가 본래 덕망이 있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왕위를 그에게 사양하였다.
탈해는 "임금이라는 자리는 보통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훌륭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이가 많다고 들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들은 시험 삼아 떡을 깨물어 보았다.
그 결과 유리의 이 자국이 많았으므로
즉시 측근들과 함께 그를 받들어 왕위에 오르게 하고,
왕호를 이사금이라 하였으니, 옛부터 전해오는 말이 이와 같았다.
김 대문은 "이사금은 방언이다"라고 말했다.
'이사금'은 곧 '이의 자국'이란 말이다.
이전에 남해가 죽음을 앞두고,
아들 유리와 사위 탈해에게
"내가 죽은 뒤에는 너희들 '박'과 '석' 두 성을 가진 사람 중에
나이 많은 자가 왕위를 이으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후에 김씨 성이 또한 흥기하였으므로,
세 성씨들 중에 나이 많은 자를 선택하여 왕위를 잇도록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왕을 이사금이라고 불렀다.
남해(28-84 재위 64-83)가 죽은 해는 84년이며,
이 해가 유리(46-107 재위 84-106)원년이다.
탈해(46-130 재위 107-125)원년은 107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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