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六年丁亥, 正月, 命<尙仁>修<三代鏡>.
신명선제 16년(88년)정해, 정월, <상인尙仁>에게 삼대경을 다듬으라고 명하였다.
元年壬子, <三代鏡>五十七卷成. <東明>・<光明>・<大武>三代之聖繪也. 仙皇, 詔, 曰;
“允爲人君者, 必有代鏡. 鏡, 所以照善也, 不可以照惡, 惡者廢之. 以戒吾子孫.”
태조황제 원년(112년) 임자
<삼대경> 57권이 이루어졌다.
<동명>・<광명>・<대무> 3대의 성스러운 그림{聖繪}이다.
선황이 조서로써 이르길;
“무릇 인군 된 자는 대경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경은 선행을 밝게 비추는 것이지 악행을 비추는 것이 아니다.
악행을 하거든 폐위시켜라. 이를 내 자손들에게 알린다.”라고 하였다.
九年庚申, 二月, 命<漢>人<師大>画<三代(東明・光明・大武三代)鏡>繪百八十卷,
以為新鏡, 其画精鲜燎然. 旧鏡五十七卷, 古色蒼然簡素, 可法. 故名為<政經>. <師大>,
初翻旧鏡, 而今又着新, 故妻以<乙布>女爵小兄.
태조황제 9년(120년)경신, <한{漢}>인 <사대師大>에게 명하여서
삼대(동명·광명·대무3대경>그림 180권을 그리게 하여 신경{新鏡}을 만들었더니,
그 그림이 정선・요연하였고, 구경(舊鏡) 57권은 고색창연하고 간소하였다.
법으로 삼을 만하여 정경(政經)이라 이름을 붙였다.
<사대師大>가 처음으로 구경을 번역하여 새롭게 하였었는데,
요사이 다시금 번역하여서 신(新)자를 붙인 것이었다.
이에 <을포乙布>의 딸을 처로 삼아주고, 소형의 작위도 주었다.
二十四年乙亥, 三月, 重修<鸞臺>爲宮. 使<白>画<三代鏡>于璧, <玄武渡河>相名焉.
태조황제 24년(135년)
3월, 란대(鸞臺)를 고쳐서 궁(宮)으로 삼았다.
<백白>을 시켜 삼대경을 넓적한 옥판에 새기게 하였다.
현무도하(玄武渡河)라고 이름 하는 그림이었다.
AD88년 신명선제(神明仙帝)는 <상인尙仁>으로 하여금 삼대경(三代鏡)을 만들게 한다.
삼대경은 추모대제, 광명대제, 대무신제의 치적을 기록한 聖繪이다.
<상인尙仁>은 한(漢)의 음과 글에 능통한 사람이었고
선원(仙院)에서 그림으로 사람들을 가르쳐 추앙을 받던 인물 이었다.
이 삼대경은 태조 원년(AD112)에 가서야 완성하게 되는데 무려 57권이었다.
이 책을 성회(聖繪)라 표현한 것으로 보아 그림으로 엮어진 책으로 보이며
태조는 <사대師大>라는 한인(漢人)을 시켜 삼대경 57권을 바탕으로 하여
삼대경회(三代鏡繪) 180권을 그리게 하는데 이를 신경(新鏡)이라 했다.
이 공로로 <사대師大>는 <을포乙布>의 딸을 처로 삼게 되고
소형(小兄)의 벼슬까지 받게 된다.
또 AD135년에는 란대(鸞臺)를 궁으로 고쳐짓고
삼대경을 벽에 그리게 하여 현무도하(玄武渡河)라 하였는데
아마도 삼대경은 후세의 고구려 왕들이 반드시 익혀야 하는
고구려의 호국무도(護國武圖)를 그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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