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황제 7년 무오(A.D.118)
3월 3군(軍)을 두었다.
<우혁羽奕>을 중군장군 <고량高良>을 좌군장군 <화직禾直>을 우군장군으로 삼았다.
6월 한인(漢人)들이 도성(菟城)에 쳐들어 와 패하여 돌아가더니,
또 화려(華麗)를 공격하였다.
<고구려사초 태조황제기>
元初五年 夏,六月,高句驪與濊貊寇玄菟
<자치통감>
원초(元初) 5년(A.D.118)
고구려가 예맥(濊貊)과 함께 현토(玄菟)를 노략질하고,
화려성(華麗城)을 공격하였다.
<후한서 동이열전 고구려기사 발췌>
漢은 玄菟와 華麗에 고구려 군사가 침입하였다하고,
고구려는 玄菟와 華麗에 漢의 군사가 침입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낙랑과 현토는 고구려와 漢의 경계지역으로 양 군사들의 대치 지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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