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황제 10년(121년)
한나라의 사신이 왔을 때
<수성>이 등후(鄧后)의 나이를 묻자 사신은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수성>이 이르길 “지난날 여후(한고조 유방의 처)는 평성에서 허리띠를 풀고
<모돈>{흉노의 선우}을 즐겁게 하였는데,
너희들은 왜 <등만>{후한의 5세 상제의 처}이 내게 허리띠를 풀고
어육(魚肉)이 되게 하지 않는가?
<호>{후한의 6세 공종}의 어미가 내게 첩 노릇을 하지 않으면
낙양(후한의 수도)은 잿더미가 될 것이야!” 하였더니
사신들이 가만히 있자 태조황제가 이 말을 듣고 <수성>을 꾸짖자 <수성>이 아뢰길
“저는 한나라를 초개와 같이 여기는데, 제가 어찌 그들이 두려운 일이 있겠습니까?
심하십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고구려사초 태조황제기>
8월 한(漢)의 벼슬아치(師)가 내조(来朝)하여
상황(上皇, 신명선제)의 빈소에 조문하고 부의를 바치며 화친을 청하였다.
군신(群臣)들이 그들은 간사한 오랑케이니 믿을 수 없으니 죽이자고 청하였다.
왕이 “저들이 우리를 예로써 찾아왔는데, 어찌 사납게 할 수 있느냐?”라고 말하며,
빈부(賓部, 손님을 대접하는 관청)에 후하게 대접하라 명하였다.
수성이 등후(鄧后)의 나이를 묻자, 사신이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수성이 말하길
“지난날 여후(呂后)는 평성(平城)에서 허리띠를 풀어 모돈(冒頓)을 즐겁게 하였는데,
너희들은 왜 등만(鄧曼)이 내게 허리띠를 풀게 하지 않으며
어육(魚肉)이 되고자 하느냐?
만약 우모(祐母)를 나에게 첩으로 주지 않는다면,
낙양(洛陽)은 잿더미가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사신이 오랫동안 좋은 말로 어루만진 연후에 왕명을 따름이 마땅하다 하였다.
왕이 그 말을 듣고 수성을 꾸짖어 말하자, 수성이 말하기를
“우리들은 한(漢)을 초개(草介)같이 여기는데,
우리가 저들을 두려워함이 심하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경(經, 경서)이 말하지 않더냐? 벌레 한 마리도 조심하여야 하거늘,
하물며 사람과 임금 된 자는 어떠하겠느냐.
교만하면 패한다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 해에 궁(宮)이 죽고, 아들 수성(遂成)이 섰다.
<후한서 동이열전 고구려기사 발췌>
이 시기 漢과 고구려의 대등한 국력을 엿 볼 수 있는 기사이다.
'고대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3. 川西 玄兎府 점령과 위구태의 서부여 건국 및 麻楽의 죽음 (0) | 2014.08.21 |
---|---|
122. 漢이 川西에 새로운 玄兎府를 설치하다 (0) | 2014.08.21 |
120. 太祖皇帝 棘城 동쪽 땅을 차지하다 (0) | 2014.08.20 |
119. 伯固의 誕生과 神明仙帝의 죽음 (0) | 2014.08.20 |
118. 김일제의 후손 가야神母 正見이 대가야를 建國하다 (0) | 2014.0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