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왕 4년(AD129년)
4월, 일지신군(日知神君)이 변산(卞山)에서 죽었다.
아리대모(阿利大母)는 (상이) 돌아와 장례를 치루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상은 <허루許婁>에게 문의를 하니, (허루가) 허락하였다.
신군(神君)은 의지를 잃어버린 이래 술에 빠져 병을 얻어 일어나지 못하였다.
상은 애통해 하였다. 니금례(尼今禮)로서 장사를 하였다.
사릉문(蛇陵門)으로 들어가니, 순장하는 자들이 매우 많았다.
<가량加良>은 이를 금지하였으나, 어쩔 수 없었다.
다시 <아리阿利>를 태성(太聖)으로 삼아, 대정(大井)에서 거주하게 하였다.
<허루許婁>를 태성(太聖)의 사신(私臣)으로 삼았고, 성부(聖父)라고 불렀다.
5월, 5로군사(五路軍事)와 9주태수(九州太守)를 설치하였다.
5로에게 명하여 모두 성부(聖父)의 딸을 취하여 군모(軍母)로 삼도록 하였다.
<생리生里>는 西路의 <월호月瓠>에게 시집 보냈고,
<간시干時>는 南路의 <길문吉門>에게 시집 보냈고,
<구다久多>는 水路의 <귀공皈公>에게 시집을 보냈고,
<하마河馬>는 北路의 <마제摩帝>에게 시집을 보냈다.
수주(水酒)의 <한조漢鳥>와 낙랑(樂浪)의 <나가那嘉>와
실직(悉直)의 <저치猪治>를 第一藩으로 삼았고,
복암(覆岩) <노을지弩乙知>와 소라(召羅)의 <방아方我>를 第二藩으로 삼았고,
일직(一直)의 <백공白公>과 일선(一善)의 <건수乾水>를 第三藩으로 삼았고,
변산(卞山)의 <진공晉公>과 추화(推火)의 <극시克市>를 第四蕃으로 삼았다.
<파사왕이 설치한 9州>
파사왕은 5로군사를 설치하여 주위의 소국을 점령하여
번국으로 만들어 9주를 설치하고 태수를 두어 관리하였다.
혁거세24년, 고구려왕 무휼이 낙랑을 습격하여 멸망시키자,
그 백성 5천 명이 투항해왔다. 그들을 6부에 나누어 살게 하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낙랑은 AD 47년 대무신제 20년에 낙랑국을 멸망시키자
낙랑국의 호족과 유민 5000명이 신라로 망명하여 온 것을 영주인근에 살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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