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마왕 11년(AD169년)
7월, 상은 구리(勾利){高句麗}가 장차 부여(扶余)를 침략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듣고,
각간(角干) <창영 昌永>에게 말하기를
“부여(扶余){百濟}는 곧 내 아들의 외조(外祖)로서,
순치지손(脣齒之係)인데 어찌 앉아서 볼 수 있겠는가!” 라고 말하며,
이에 서로군(西北路) 정병(精兵) 1만 명을 일으켜 나아가 감매평(甘買坪)에 이르렀다.
余王(부여왕)이 소식을 듣고 감사하며 말하기를
“나의 사위가 의리가 있구나. 양국이 의지하여 안심이다” 라고 하였다.
이에 호궤(犒饋)하며 장졸들을 크게 접대하여 교환(交歡)하였다.
구리(勾利)는 결국 도달하지 못하고, 한 달을 머물다가 돌아갔다.
167년 개루왕이 즉위하고,168년 백제인 <도미>가 고구려에 투항한다.
이듬해 169년에 신대제는 백제를 대군으로 침략코자 하니
백제와 신라가 최초로 동맹을 맺어 고구려의 침략을 막았다는 것이다.
<도미>는 개루왕의 즉위를 반대한 백제 호족이었을 것이고
개루왕은 그의 딸 가리를 지마에게 주어 최초의 혼인동맹을 맺은 것이다.
※ 참고
호궤(犒饋) : 군사에게 음식을 주어 위로하는 것
※ <가리加利>의 가계도
4.盖婁(120?-188)
재위 167-187
|
加利(140?-) = 6.祇摩(131-191)
| 재위 159-191
居利(1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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