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마12년(170년)

 

4월 큰 바람이 동해로부터 갑자기 이르러 나무가 꺾이고 꼬리털이 날렸다.

 

이것을 야적(野賊)들이 크게 이르렀다고 하여,

피하고 숨는 사람들이 들판으로 이어졌다.

 

<익종翌宗> 등이 찾아서 그릇되었음을 백성들에게 보이고 금지시켰으나

(백성들이) 듣지 아니하였다.

 

밤이 되자 바람이 그치고 하늘이 개이자, 바야흐로 민심이 평안해졌다.

 

이날 왕이 망루에 올라, 멀리 바라보고 있으니,

명사(冥沙)의 가운데에 한 무리가 노약자를 곁에서 보호하고 있었다.

 

백성들을 진압하여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아랫사람으로 하여 조사하게 하니,

곧 도촌(盜村)의 사람들이었다.

 

(왕이) 불러 물어보니, 모두 말하기를

 

“신들은 이미 죄가 중하여 지킬 수 없습니다. (왕의) 성덕에 의지하여 다시 태어났으니,

이미 한번 죽은 몸 죽음으로 보답하기를 원합니다.

그러한 까닭으로 물불도 가리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한탄하며 말하기를

 

“사람의 본성은 비록 착하지만, 그 둘레에 있었던 이유로 악하게 되었음이 분명하다.”

라고 하였다.

 

그 목자(牧者)로 하여금 가부를 신중히 하도록 하였다.

 

각자에게 술을 주도록 명하고,

젊은 장정들은 뽑아서 병관과 예리(隸吏)에 속하게 하고,

늙은이는 노예(老隸)로 대우하도록 하였다. 고기와 쌀을 주도록 명하였다.

 

이에 천하에 조서를 내려

 

“사내는 도촌(盜村) 사람같이 죽기를 본받아라.

 

하물며 다른 곳에서 온 백성들은 어떠하겠는가.

 

짐의 덕이 엷어 넓게 덮지 못하니 너희들의 질병과 고통을 알지 못한다.

 

지금 나라 안팎에 백성의 소리를 듣는 관리를 두니,

무릇 근심이 있는 자는 직언을 기피하지 말라.

 

어린 아이의 하소연과 어미(여자)도 이와 같이 가능하다”라고 하였다.

 

6부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고 흡족하여 말하기를

 

“선신(先神)이 내려와 대면했다면 그와 같이 말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7월 큰 메뚜기 떼가 곡식을 해쳤다.

 

왕과 애후와 삼모가 남교(南郊)에서 농신(農神)에게 제사를 지냈다.

 

12월 이방대사 <백석白石>이 아뢰어 말하기를

 

“삼년동안 (곡식이) 익지 않았는데 올해는 최대의 굶주림이 있습니다.

 

처음에 도촌(盜村)은 300명이 넘지 않았고

백성들이 임금의 덕에 감화되어 점점 줄어들었는데,

금년 7월 이후로 도촌에 새로 늘어난 자가 이미 천명을 넘었으며,

각지의 문민소(問民所)에 부양하고 있는 도민(盜民)들이 또한 천명을 넘었습니다.

 

백성을 회유함에 자식을 기르는 것처럼 사랑에 빠져있으니,

반대로 좋아하지 않은 자가 있으니, 가벼운 벌을 베풀어 주기를 청합니다.”

라고 하였다.

 

왕이 허락하지 아니며 말하기를

 

“올해의 조짐은 모두 나의 부덕이다. 어찌 백성들에게 죄가 있겠느냐”라고 말하였다.

 

이에 스스로 벌을 내리기를 하늘에 하소연하였다.

 

서울의 백성들은 그 말을 듣고 서로 주의하고 조심하는 자가 많았으며,

감동하여 우는 자가 있었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