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마왕 14년(AD172)
정월 북로장군(北路將軍)이 말갈(末曷) 수십 대(隊)가 우리의 국경으로 사냥을 나와서
관리와 백성들을 죽이거나 노략질하였다고 비보(飛報, 아주 빨리 보고함)를 전했다.
그런 이유로 말갈추장 3인을 붙잡아 바쳤다.
왕이 <막혜莫兮>에게 적의 소굴로 깊숙이 들어가
남은 적을 소탕(掃蕩)하도록 명하였다.
7월 말갈의 모든 추장들이 길을 나누어 들어와 도둑질하였다.
대령책(大嶺柵) (성)주 <한기漢己>가 지키지 못해
(말갈)적이 니하(泥河)에 이르러 인심이 흉흉하게 되었다.
<막혜莫兮>가 부여에 구하기를 청하여, 부여가 5명의 장군을 보내어 도왔는데
(말갈)적이 그 풍문(소문)을 듣고 퇴각하여 흩어졌다.
말갈은 예맥의 갈래로 흑룡강과 송화강, 백두대간 등에
여러 部로 흩어져 집거하며 부족장(추장)이 통솔한다.
그 중 속말부는 대부분 고구려의 庶民으로 편입되고
흑수부 등은 실위국을 건국하지만 고구려 광개토대제 때 정벌된다.
훗날 여진족이 되어 金과 淸 제국을 건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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