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마왕 27년(AD.185)

 

2월 왕이 다시 <애후(愛禮140-199)>를 사랑하게 되었다.

 

먼저 왕과 <애후>와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여 1년 동안 별거하고,

부군{逸聖(135-212}은 처음부터 끝까지 곁에서 보호하였다.

 

이 때에 이르러 다시 총애를 하여 군신들에게 대연회를 베풀었다.

 

 

7월 제후들이 황산(黃山)위에서 모였다. 부군의 동맹을 주관하였다.

 

 

9월 계도(鷄徒)가 흑치를 높이어 천제(天帝)라 하고, 존막대언(尊莫大焉)이라 하였다.

 

부군(副君)이 금지하며 말하기를

 

“神國의 존칭은 아금(我今)과 같음이 없는데, 흑치는 어찌 제(帝,)라 칭하느냐?”

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흑치>가 부군을 순종하지(따르지) 않았다.

 

이때 (흑)치의 딸 <빈기시份其市>가 왕의 총애를 받았는데,

흑치가 <빈기시>로 하여금, 은밀히 왕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부군이 <애후>와 안으로 합심하여 음(陰)으로 죽기를 맹세하여,

무리들이 장차 반역을 꾀하려합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이에 부군을 의심하게 되었다.

 

 

11월 <홍가洪可>를 경로장군으로, <문기文其>를 경모,

흑치의 아들 <가다마리加多馬利>를 호성장군으로 삼았다.

 

모두 왕의 특지(特旨)가 있었다.

 

<흑치>가 <일장日長>의 처 <변실邊失>을 음란하였다.

 

<일장日長>이 서로로 도망하였다.

 

<과다흑치>를 다시 이벌찬으로, <복생福生>을 품주로 하였다.

 

계도(鷄徒) 10만 명을 입경하게 하여 성을 보호하도록 하였다.

 

이 때 날이 차갑고 큰 눈이 내렸다.

 

계도의 폐단이 심히 많았다.

 

부군이 금지하기를 청하였으나, 왕이 (일성에게) 다른 뜻이 있다고 하여,

부군을 일선주(一善州)에 유배를 보냈다.

 

 

지마왕 28년(AD.186)

 

정월, <흑치黑齒>가 왕을 다그쳐서 흑치의 딸 <빈기시份其市>를 성모로 삼고,

<달해達亥>를 낮추었다.

 

왕이 금지할 수 없었다.

 

<애후>가 왕의 딸 <내례內禮(186-263)>를 낳았다.

 

<흑치>가 왕의 딸이 아니라고 하였다.

 

왕이 아기를 씻기려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2월 흑치가 자칭 대부군(大副君)이라고 하였다.

 

<달해達亥>를 강제로 음란하여 밀처로 삼았다.

 

계도(鷄徒)의 추장들을 주군(州郡)에 나누어 보내고, 주군대감(州郡大監)으로 삼았다.

 

<흑치>가 <변실邊失>을 <판일板日>에게 시집 보냈다.

 

택두(宅頭)에게 새로운 정당(政堂)을 금성(金城)에 짓도록 명하였다.

 

마두대정(馬豆大井)이라 이름 지었다.

 

4부집서(四部執書)를 두었는데 모두 계도(鷄徒)의 무리이다.

 

이로써 집서(執書) <유지나兪知那>를 북로로, <병지屛旨>를 수주태수로 하였다.

 

 

3월 흑치가 <애후>를 다그쳐 음란하며 말하기를

 

“나에게 천자(天子)의 운명이 있으니, 마땅히 너를 후(后)로 삼겠다.”라고 하였다.

 

후가 부득이 응하며 말하기를

 

“네가 천자가 되면, 나의 남편(지마)은 어디로 돌아갈꼬?”라고 물었다.

 

(흑)치가 말하기를

 

“내가 곧 너의 남편이다. 다른 사람이 너의 남편이 아니다.

운이 이미 자나갔고, 문천사(蚊川祠)에 당부(當付)하였다.”라고 하였다.

 

아마도 윗사람을 죽이어 찬탈하려는 뜻이었다.

 

(애)후가 이에 기뻐하는 체하고, 은밀히 신부(信符)를 보내어,

<흑치>를 토벌하라는 명령을 각로(各路)에 전달하였다.

 

 

5월 부군(副君, 일성)이 서로군(西路軍)을 이끌고 입경하여,

계도(鷄徒)와 도산(桃山)에서 크게 싸웠다.

 

이 때 <홍가洪可>가 경군(京軍)으로 남군(南軍)을 남교(南郊)에서 막았다.

 

<홍가>의 처 <문기文其>가 달래어 말하기를

 

“우리들 모두는 니금의 신하이므로, 오늘 (우리는) 흑치의 신하가 아니다.

만약 니금을 도우려면 부군을 따라야 한다.”고 하였다.

 

<홍가>가 옳다고 하여 이에 남군과 합하여 입도(入都)하고,

호성군(護城軍)을 깨뜨려 <가지마리加只馬利>{흑치의 아들}의 목을 베었다.

 

<흑치>는 바야흐로 <애후>와 <달해達亥>와 함께 술을 마시며 노래를 짓고 있었는데,

변란을 듣고 놀랐다.

 

<애후>가 웃으며 말하기를

 

“천하가 계도에게 기울었는데, 나의 남편(흑치)이 어찌 두려워하는가.”라고 하였다.

 

흑치가 말하기를

 

“나의 처가 가히 천후(天后)이고,

천후가 내게 있고 누가 감히 난(亂)을 일으킨단 말인가.”

라고 하였다.

 

이에 대취하여 춤추었다.

 

이미 세상이 변했음을 고(告)하였지만 응하지 아니하였다.

 

大軍이 이르자 관군이 모두 화답하여 계도를 사로잡거나 목을 베었다.

 

난리 중에 하는 말로 흑치를 찾으라 하니,

흑치가 무서워 벌벌 떨며 달려가 <애후>를 안았다.

 

<(애)후>가 꾸짖어 말하기를

 

“배반한 노예가 어찌 이럴 수 있느냐!”라고 하였다.

 

이에 가노(家奴)로 하여금 목을 베어

그 머리를 정상(井上,성 위)에 내걸도록 명하였다.

 

<홍가洪可>{경로}와 <군계君啓>{남로}등이 들어와 <(애)후>에게 절하였다.

 

후가 말하기를

 

“나의 남편(지마)이 죄수 중에 보이느냐. 하늘의 태양이 보이지 않는 지 오래이다.

너희들은 나를 받들어 어찌 (왕이 있는 곳으로) 가지 않느냐.”고 하였다.

 

이때부터 <홍가> 등이 <(애)후>를 받들어 왕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서로 얼굴을 보자 왕이 <(애)후>를 안으며,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였다.

 

<(애)후>가 이어 명하여 홍가와 군계가 길을 나누어 부군의 군대와 더불어

도산의 적을 협공하도록 하여, 적을 크게 쳐부수었다.

 

도산의 싸움으로 인하여 남은 신성한 그릇과 성스러운 발자취가 남김이 없어지고,

모두 지키지 못했도다.

 

선골(仙骨)들이 그것을 슬퍼하고 눈물을 흘렸다. 역시 어찌할꼬?

 

부군이 제로군(諸路軍, 5로군)를 이끌고 들어와 남도(南挑)에서 알현하였다.

 

왕과 <애후>가 부군의 손을 잡아주며, (그간의 노고를) 위로하였다.

 

(일성을) 부군 겸 이벌찬으로 명하고,

<지진내례只珍內禮(155-212)>를 품주로 하였다.

 

제로장사(諸路壯士)들에게 큰 상을 주었다.

 

이로써 <일장日長>을 호성장군으로 삼았다.

 

(아슬라) <구군臼君>이 그녀의 딸 <병인兵人>을 <홍체洪彘>에게 시집보냈다.

 

부군이 아뢰어 말하기를

 

“흑치의 도적(黑賊)은 경망하고 조급함이 있어

천명을 알지 못하고 망동(妄動)하였는데 그 무리가 심히 많습니다.

뛰어난 형벌도 용서하여 편안함을 얻음과 같지 않습니다.”

라고 하였다.

 

왕이 허락하였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