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마왕 31년(AD.189)
정월 <애후>와 <삼니금>이 도산에서 조회를 받았다.
<유례有禮>를 이벌찬, <운생雲生>을 품주, <한국汗國>을 평부이방으로 하였다.
<한국汗國>은 삼(니)금의 서자(庶子)다.
2월 <삼(니)금>이 골문에게 큰 잔치를 열었다.
3월 <윤공尹公>{일성의 아버지}의 사당을 세웠다.
<윤공尹公>을 높이어 갈문왕(葛文王)으로,
<이리생伊利生>{일성의 어머니}은 태성대모(太聖大母)라고 하였다.
<홍개洪介>와 <분생粉生>을 권처로 삼았다.
<문기文其>가 <삼금>의 딸 <문군文君>을 낳았다.
<삼금>이 아기를 씻겨주었다.
일지댁(日知宅)을 <웅선雄宣>각간에게 주어,
<한제閑帝>{웅선의 모, 운제의 막내딸}대모를 모시도록 하였다.
4월 <삼금>이 <애후>와 <삼공三公>과 더불어 <윤공尹公>의 사당을 찾아뵙고,
큰 제사를 지냈다.
<지진내례只珍內禮>가 <석추昔鄒>의 아들 <벌휴伐休>를 낳았다.
<삼금>이 대면하여 아기를 씻겨주고 쌀을 내렸다.
호성장군(護城將軍) <대선大宣>이 <완랑完郞>태자비 <해생解生>과 잠통(潛通)하여
아들 <대랑大郞>을 낳았다.
<완랑完郞>이 화가 나서 <대선大宣>을 해치고자 하였다.
우림군(羽林軍, 호성장군의 수하)이 그것을 알고,
야습하여 <완랑完郞>의 역사(力士)를 죽였다.
선군(仙軍)이 크게 일어나 우림군과 알천(閼川)에서 싸웠다.
<삼(니)금>이 소식을 듣고,
<대선大宣>을 음즙벌(音汁伐)로, <완랑完郞>을 골화(骨火)로 유배를 보냈다.
이에 선군(仙軍)을 방면하였다.
선군이란 <설동雪童>과 <초동草童>의 호위군이다.
<해추亥鄒>를 호성장군으로, <팽선彭仙>을 (해추의) 처로 삼았다.
(해추의 처) <날생捺生>이 바람을 피워 <원효圓孝>에게 도망간 때문이다.
7월 계도(鷄徒)가 장차 난을 일으킨다는 소문을 듣고
<한석汗昔>태자를 구령(駒令)으로 유배를 보냈다.
이 때문에 <한석汗昔>의 처 <문개文介>를 <한국汗國>에게 시집보냈다.
<한국汗國>과<한석汗昔>은 같은 어머니 <한패汗貝>의 자식인데,
<한석汗昔>은 <지마>의 아들이고, <한국汗國>은 <일성>의 아들이다.
<한국汗國>은 <문개文介>에게 장가들기를 원하여,
그 형을 <삼금>에게 참소하여 유배를 보냈다.
달려가 <문개文介>를 안으며 말하기를
“오늘 바야흐로 형수를 얻어 나의 처로 삼았다.”라고 하였다.
<문개文介>가 말하기를
“너의 형이 비록 내게 있을 때도 너와 상합(相合)하였는데,
다시 어찌 참소하여 유배를 보내느냐?”라고 하였다.
<한국汗國>이 말하기를
“숨어서 간통하는 것은 처로 삼아 즐거워하는 것과 같지 않다.”라고 하였다.
<문개文介>가 참지 못하고, <한석汗昔>을 보내며 눈물을 흘리며, 목이 메도록 불렀다.
이에 <한국汗國>이 비녀(婢女)에게 강제로 명하여 눈물을 씻기고 장식을 하여,
결혼식을 행하였다.
이때 사람들이 노래하여 말하기를
“형은 인자한데 동생은 사납기가 이를 데 없다.
정부(情婦, 문개) 역시 눈물을 흘리고, 눈물이 몇 말(斗)이던가.
황산강(黃山江)의 물이 모두 이 눈물이라네.”라고 하였다.
8월 <완랑完郞>과 <대선大宣>{순선과 대양의 아들}이 풀려나 귀경하였다.
<해생解生>{영선과 루생의 딸}을 <대선大宣>의 처로,
<하산夏山>을 <완랑完郞>의 처로 하였다.
포사에서 결혼을 행하였다.
<하산夏山>은 곧 <대선大宣>의 같은 어머니 여동생이고,
<해생解生>은 <일장日長>의 같은 어머니 여동생이다.
9월 왕이 큰 제사를 행하기 위하여 <달해達亥164-245>와 더불어 환도하였다.
<삼금>이 나가 교외에서 맞이하였다.
<애후>는 서로 만나는 것을 긍정하지 않았다.
<삼금>이 한결같이 청하여, <삼금>의 뒤를 따랐다.
<애후>가 왕을 흘겨보며, 서로같이 자리에 앉기를 긍정하지 않았다.
왕이 나아가 (애후를) 안으며 말하기를
“너는 새로운 남편을 어떻게 생각하기에, 옛 남편을 멀리 하느냐.”라고 하였다.
<애후>가 말하기를
“나는 천신(天神)이 신금(新今)과 짝 지워주는 꿈을 받았다.
네가 비록 옛 남편이나, 천명이 이미 다한 걸 어찌하란 말이오.”라고 하였다.
왕이 화가 나서 <애후>를 치려하였다.
<애후>가 <삼금>에게 막으라고 명하자,
<삼금>이 <애후>를 보호하여 그 지팡이를 받으며 말하기를
“신의 죄입니다. 신을 때리고 노여움을 푸시기를 청합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더욱 화를 내며 <삼금>을 치려고 하자,
<애후>가 <남군南君(163-190)>에게 지팡이를 빼앗으라고 명하였다.
<남군南君>이 지팡이를 빼앗자, 왕이 (남군에게) 말하기를
“너는 어머니는 위하고, 아버지는 위하지 않는 것이로구나.”라고 하였다.
<남군南君>은 대꾸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여기에서 삼니금, 삼금, 신금, 새 남편은 <일성>을 말한다.
여왕 <애례>가 일성을 새 남편으로 맞이하여 政事를 <일성>에게 맡기게 되고
남왕 <지마>와의 갈등을 엿 볼 수 있고,
남왕보다 여왕의 권력이 더 센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애례> 50살, <지마> 59살, <일성> 55살, <南君>太子 27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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