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성왕 3년(AD.194)
5월 북로장군 <마택馬宅>이 낙랑(樂浪)의 철기(鐵騎) 3천명을 거느리고
북쪽 시골을 넓혀, 비열흘(比列忽)에 이르러 돌아왔다.
왕이 <길선吉宣(172-226)>을 보내어 작위를 더하여 위로하였다.
10월 <유지나兪知那>가 아뢰어 말하기를
“지금 북로(北路)는 서로(西路)보다 심히 중요한데, 산으로 막히어 길이 나쁩니다.
장사(將士)들이 곤란하고 고달프니,
지금부터 북로장사와 서로(장사)를 한 몸으로 대우하기를 청합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유지나>의 말을 따랐다.
12월 말갈(末曷)의 12추장이 사신을 보내어
전피(獸皮, 짐승의 가죽)를 바치고 칭신(稱臣)하였다.
내부(內附)하기를 원하여, 옷과 술을 내리고 그들을 보냈다.
비열흘(比列忽)은 함경남도 안변군 인근이다.
낙랑의 철기 3천명은 시길-창특-최리의 낙랑국이 멸망하자 그 지배계급의 일부가
신라의 낙랑군(죽령 인근)으로 이주해 온 철기병을 말한다.
<낙랑군과 비열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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