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성왕 11년(AD.202)

 

5월 <대선大宣> 上相(이벌찬)과 <문랑文良> 兵飡(병관이찬)이

웃전에 아뢰어 말하기를

 

“나라의 융체(隆替, 성쇠)는 정통을 계승함에 있습니다.

지금 <삼공三公>태자는 게으르고 약하며 병이 많습니다.

 

<아달라阿達羅>태자는 영웅호걸입니다.

 

정통으로 이와 같이 좋음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지진只珍>황후가 겸손히 사양하며 말하기를

 

“나의 아들이 비록 좋으나, 어찌 감히 애후(愛后)의 아들을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삼공>이 약하다면, 곧 <우옥右玉>태자가 또한 좋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왕이 화를 내며 말하기를

 

“<우옥>태자는 나의 아들이 아닌데, 어찌하여 나를 계승함이 가당하겠느냐.

하늘의 운수가 나에게 돌아왔는데, 나의 아들이 아니면 곧 불가하다.”라고 하였다.

 

<지진只珍>이 놀란체하며 말하기를

 

“첩이 말하는 것은 (지마의 자식을) 왕의 자식으로 삼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찌 왕의 자식이 아닌지를 모르겠습니까.

대신함이 불가하다면 <한국汗國>태자가 옳습니까?”라고 하였다.

 

왕이 또 화를 내어 말하기를

 

“<한국汗國>은 어미가 천하다. 어찌 정통으로 세우는 것이 옳단 말이냐?”라고 하였다.

 

<지진只珍>이 말하기를

 

“어찌하면 하면 이치에 마땅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왕이 <대선大宣>에게 설명하며 말하기를

 

“너희들의 말을 나 역시 깊이 생각하겠다.

물러나 상선(上仙)등과 의논하여 정하고 오라.”고 하였다.

 

이때부터 <지진只珍>이 곧 <내공內公>으로 하여금,

상선(上仙) 등에게 후하게 뇌물을 주도록 하였다.

 

드디어 <아달라阿達羅(180-243)> 태자가 정통태자로 섰다.

 

이로써 <내례內禮(186-263)>공주를 정통태자비로 삼았다.

 

<삼공三公>태자는 호색하여, 권처를 간통함이 많아,

왕이 태자의 제신(諸臣, 모든 신하)을 꾸지람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폐함을 당하였다.

 

 

9월 <아달라阿達羅>태자가 <문기文其>의 집에 행차하였다.

 

<아달라> 태자는 총명(聰明)하고 예지(睿智=叡智, )가 있었으나,

정통(正統, 후계자)으로써 삼가하고 지켜야하는 예절을 알지 못하여,

대위(大位)를 나아감에 이르렀으나, 점차 어디론가 떠나는 일이 있었다.

 

태사(太師) <수류首留>가 간하였으나 듣지 아니하였다.

 

드디어 <문기>에게 미혹되는 바가 있었다.

 

 

11월 <아달라阿達羅>와 <문기>의 아들 <홍완洪完>이 형산(兄山)에서 사냥을 하였다.

 

우연히 큰 멧돼지를 만났는데 태자의 동생 <벌휴伐休(189-256)>가 활을 쏘아 죽였다.

 

(사냥 온) 무리들이 벌휴의 나이가 어림에도 능히 활을 쏠 수 있음에 모두 놀랐다.

 

 

여왕 <애례愛禮>가 199년에 죽어 권력이 <일성>왕으로 옮겨 왔기 때문에

<애례愛禮>의 아들이 아닌 <일성>의 아들로 정통태자를 세웠다는 것이다.

 

이때 <일성> 68살, <지진내례> 48살,

<우옥> 28살, <아달라> 23살, <벌휴> 14살이다.

 

<우옥>은 <애례>와 <지마>의 아들이고

<아달라>는 <지진내례>와 <일성>의 아들이다.

 

<벌휴>는 <지진내례>와 <석추>의 아들이고

<삼공>은 <일성>과 <애례>의 아들로 <벌휴>와 동갑이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