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三年己丑,

七月, <公孫康>, 割<屯有>以南地, 為<帶方國>.  

十月, 移居于<淌>南<牛山>, 改為<丸都>, 本<桂婁>之都也.  

 

산상대제 13년{AD209}기축,

 

7월, <공손강>은 둔유(屯有)> 이남의 땅을 차지하고 대방국이 되었다.  

 

10월, 창남(淌南)의 <우산(牛山)>으로 거처를 옮기고,

그곳의 이름을 환도(丸都)라 바꿨다.

 

이곳은 본래 <계루桂婁>의 도읍지였다.  

 

 

구지22년 기축(AD209)

 

10월 (고구)려왕 <연우延優>가 환도(丸都)로 도읍을 옮기면서

겸손하게 글을 올려 화친을 청하였다.

 

왕이 <공손강公孫康>왕을 두려워하여 감히 드러내어 대접하지 못하고,

태자 <백인苩仁>으로 하여금 그 사신을 은밀히 국경에서 대접하도록 하여 돌려보냈다.

 

 

백제의 이중적인 외교가 드러나 보인다.

겉으로는 공손(公孫)씨에게 내부하는 것처럼 하였으나,

실제로는 고구려와 밀통하고 있었다.

 

 

<발기拔奇>는 형(兄)이면서도 왕이 되지 못한 것을 원망하여,

연노부(涓奴部)의 大加와 함께 각기 하호(下戶) 3만명을 이끌고

<공손강>에게 투항하였다가 돌아와서 비류수(沸流水) 유역에 옮겨 살았다.

 

(지난 날) 항복했던 호족(胡族)도 <이이모伊夷模>를 배반하므로

<이이모伊夷模>는 새로 나라를 세웠는데(更作新國)

오늘날 고구려가 있는 곳이 이곳이다.

<삼국지 동이전>

 

 

공손강이 둔유 이남의 땅에 대방국을 건설하자

동호(東胡)가 산상대제를 배반하게 되니

산상대제는 209년에 환도(今 조양)로 천도하게 되며

고구려는 요동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한다.

 

 

桓․靈之末, 韓濊彊盛, 郡縣不能制, 民多流入韓國. 建安中,

公孫康分屯有縣以南荒地爲 帶方郡, 遣公孫模․張敞等收集遺民, 興兵伐韓濊, 舊民稍出, 是後倭韓遂屬帶方. 景初中, 明帝密遣帶方太守劉昕․樂浪太守鮮于嗣越海定二郡,

諸韓國臣智加賜邑君印綬, 其次與邑長.

<삼국지 韓條>

 

後漢 환제와 영제 말년에 이르러 韓과 濊가 강성해져서

그 군현을 제어할 수 없이 되자 백성들이 많이 韓나라로 도망해 들어갔다.

 

건안(後漢 마지막 황제 헌제, 189-220)년 중에 공손강(요동태수)이

남쪽 지방 거친 땅을 쪼개서 대방군(帶方郡)을 삼고

<공손모>, <장창> 등을 보내서 유민들을 수집해서 군사를 일으켜

韓과 濊를 치니 옛날 살던 백성들도 차츰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후로는 倭와 韓은 드디어 帶方에 소속되었다.

 

景初년 중에 明帝(삼국시대 魏나라 2대 황제)가 비밀히 帶方太守 <유흔劉昕>과

樂浪太守 <선우사鮮于嗣>를 바다건너 二郡으로 보내어

韓의 여러 臣智들에게 읍군의 인수를 더 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 읍장에게도 각각 인수를 더 내렸다.

 

 

 

漢末 황건적의 난과 과도한 징세를 피해 요동과 韓으로 이주한 漢人이 많았다.

 

요동에서는 공손도가 망명인을 결집하게 되고 曺魏는 공손씨를 세력 하에 두고

東胡(烏桓)를 압박하게 되니 東胡는 고구려를 배반하고 공손씨와 연합하게 된다.

 

고구려는 공손씨의 세력에 밀려 난하 이동으로 밀려난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