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달라왕 4년(AD.216)

 

4월, 다파나(多婆那)가 <영오랑迎烏郞>을 임금(君)으로 삼았다.

<아딜라기>

 

 

제8대 아달라왕(阿達羅王)이 즉위한지 4년 정유(丁酉, AD157)에

동해(東海) 바닷가에는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 부부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연오>가 바다에 나가 해조(海藻)를 따고 있는데

문득 바위 하나(또는 물고기 한 마리라고도 한다)가 있어,

<연오랑>을 업고 일본(日本)으로 돌아갔다.

 

나라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이는 범상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하고 세워 왕을 삼았다.

〈일본제기(日本帝紀)를 살펴보면, 전후(前後)에 신라 사람으로 왕이 된 사람은 없다.

그러니 이는 변읍(邊邑)의 작은 나라의 왕이지, 일본 왕은 아닐 것이다.〉

 

<세오>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 것이 괴이하게 여겨 돌아오는 곳을 찾아보니

남편이 벗어 놓은 신발이 있었다.

 

역시 그 바위 위에 올라갔더니, 바위가 또한 <세오>를 업고 전(前)과 같았다.

 

그 나라 사람들은 놀라고 이상히 여겨 왕에게 아뢰어 (세오를) 바쳤다.

 

부부가 서로 만나, 세워 귀비(貴妃)를 삼았다.

 

이때 신라에서는 해와 달에 빛이 없었다.

 

일자(日者, 길흉을 점치는 사람)가 왕께 아뢰기를,

 

“해와 달의 정기(精氣)가 우리나라에 내려져 있었는데,

지금은 일본으로 가 버렸기 때문에 이러한 괴변이 생긴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사신을 보내서 두 사람을 불러오도록 하였다.

 

<연오>가 말하기를 “내가 이 나라에 이른 것은 하늘이 시켜 그리된 일이다.

지금 어찌 돌아갈 수가 있겠는가.

 

비록 그러하였더라도 나의 비(妃)가 짠 고운 비단이 있으니

이것으로 하늘에 제사를 드림이 옳도다.”라고 하였다.

 

이에 그 비단을 주니, 그 말에 의지하여 제사를 지냈다.

 

연후에 해와 달이 예전과 같았다.

 

그 비단을 어고(御庫, 임금의 창고)에 감추어 두고, 국보(國寶)로 삼았다.

 

그 창고를 이름 하여 귀비고(貴妃庫)라 하였다.

 

또 하늘에 제사지낸 곳을 영일현(迎日縣) 또는 도기야(都祈野)라 한다.

<삼국유사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의 기사 >

 

 

 

삼국유사에는 <연오랑(延烏郞)>으로 박창화필사본 아달라기와 영일읍지에는

<영오랑(迎烏郞)>으로 혼용되어 쓰이고 있다.

 

박창화 필사본 아딜라기와 삼국유사와는 59년의 기년 차가 난다.

 

김부식이 신라 초기 기년을 끌어올린 탓이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