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지30년 정유(AD.217)
3월 <공손강公孫康>이 대방왕(帶方王)이라 바꾸어 칭하기 시작하였다.
그 여동생 <보고宝皐>를 왕에게 잉첩으로 보냈다.
당시 조정에는 한인(漢人)을 등용함이 자못 많았으며 요동왕에게 의지하였다.
이 때문에 <보루宝婁(173-222)>와 <보고宝皐(201-257)>를 중히 여겼는데
<보루宝婁>는 아들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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