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발역미拓跋力微>는 아버지인 <힐분詰汾>이 천녀(天女)와 동침하여 낳은 아들이다.

 

천녀(天女)는 <역미力微>를 낳고는 어디론가 돌아갔다고 한다.

 

신화의 이야기니 그러려니 하지만 웬지 모를 살모(殺母)의 낌새가 느껴진다.

 

 

<힐분詰汾>과 천녀(天女)의 동침,

이런 이야기는 부족이 생성되고 확장해온 과정을 신화화해서 묘사한 것이다. 

 

대흥안령산맥 동쪽 산비탈의 알선동(嘎仙洞)에서 서남으로 내려온 탁발씨 부족이

그 남천(南遷) 과정에서 다른 부족을 병합한 것으로 보인다.

 

 

<역미力微>는 AD173년에 태어났다.

 

그리고 AD 220년 아버지인 <힐분詰汾>이 죽자

48세의 중늙은이 <역미力微>가 군장(또는 대인) 자리를 계승한다.

 

그러나 군장 계승의 순간, 이를 비집고 들어온 서부대인(西部大人)의 공격을 받고는, 

크게 패배함으로써 <역미力微>는 몰록회(沒鹿回) 부족에게 도망을 가서 몸을 숨긴다.

 

이 몰록회 부족의 보호아래 장천(長川)이란 곳에 살면서

탁발선비 부족들을 조용히 다시 끌어 모은다. 재기를 해가는 것이다.

 

그러다가 AD 233년, <역미力微>가 61세 되던 해,

<역미力微>는 자신을 보호해 준 이 부족의 대인(大人)을 죽을 위험에서 구해준다.

 

이에 감탄한 군장은 자신의 딸을 <역미力微>에게 준다.

 

그러나 이렇게 보호해주고, 구해주고, 딸을 주어 사위를 삼는 좋은 관계는

훗날 <역미力微>의 독한 배신과 비극으로 끝난다.

 

<역미力微>가 76세 되던 AD 248년 이 몰록회 부족의 군장이 죽자,

<역미力微>는 처가에 대해 지독한 반란을 일으킨다.

 

그래서 군장의 딸, 즉 자신의 마누라와, 군장의 두 아들,

그러니까 자신의 처남까지 죽이고 이 부족을 통채 차지해버린다.

 

게다가 <역미力微>에게는 원래 배다른 형이 있었다.

 

<독발필고禿發匹孤>라고 하는데,

이 배다른 형은, 아버지 <힐분詰汾>의 지위를 동생이 계승하자 

자기 식솔들을 끌고 서쪽으로 떠나간다.

 

형의 입장에선 떠난 것이지만, <역미>의 입장에서는 숙청해서 축출해버린 것이다.

 

이 <독발필고禿發匹孤>는 나중에 하서(河西) 지방,

오늘날의 감숙성 인근에서 흥기한 선비족 독발부(禿發部)의 시조가 된다.

 

그리고 독발(禿發)은 탁발(拓跋)과 같은 말이지만 표기가 달라짐으로써

완전히 다른 부족으로 떨어져 나간 셈이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전형적인 배은망덕이었다.

 

이제 원래의 자기 부족에 이 몰록회 부족까지 합쳐버린 <역미>의 힘은 더욱 커졌다.

 

그렇게 힘을 키워가던 <역미>가 86세 되던 AD258년,

성락(盛樂)으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대규모 제천행사를 한다.

 

유목민에게 제천행사를 한다는 것은 단순한 행사가 아니다.

 

자신을 최고의 권력자로 스스로 선포하는 것이다.

 

이 제천행사에 참여하면 곧 그 주인공을 자신의 보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고,

불참하면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서 그 자체로 이미 선전포고와 같은 것이다.

 

그리하여 제천행사를 하고 난 다음에,

이 제천행사에 참여하지 않은 백부(白部)를 공격해서

백부의 수장, 곧 백부대인을 죽여 버린다.

 

제천행사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세력이 강성해졌다는 말이고,

백부대인을 죽였다는 것은 그 세력을 군사력으로 사방 천지에 과시했다는 말이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부족에다가,

처가 집 부족까지 차지하여 새로운 초원의 강자가 된 것이다.

 

AD261년에는, 위나라를 삼켜버린 <사마의>의 진(晉)과 수교를 하면서

장남인 <사막한沙漠汗>을 인질로 보낸다.

 

진(晉)과 선린관계를 가진 것이다.

 

그러나 AD 277년 선비족의 여러 대인들이 모여 <역미>의 장남 <사막한>을 죽였고, 

이에 상심한 노년의 <역미>도 곧 죽는다.

 

<역미>가 강성하기는 했지만,

아직은 선비족 전체에 대해 전제적 권력을 행사하지는 못했고,

적지 않은 반발이 있었던 것이다.

 

<역미>의 아들과 <역미>가 한 해에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탁발선비 부족의 통치 권력은 계속 이 <역미>의 집안에서 이어간다.

 

태생 자체가 연맹성격으로 살아온 유목민 사회에서 한 잡안이 권력을 세습한다는 것은 부족연맹 단계를 벗어나 전제적 권력이 세습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강한 결속력을 확보했다는 말이다,

 

<역미>로부터 시작해서 모두 12명의 군장이 길고 짧게 바통을 이어받아

<십익건十翼犍>까지 다다른다. 

 

<역미>의 손자의 손자, 즉 고손자인 <십익건十翼犍> 시대에 와서

탁발선비는 국가체제를 갖추게 된다.

 

처가(妻家)를 살처분한 결과는, 당사자에게는 배은망덕의 극악한 비극이었지만,

선비족 역사로는 커다란 밑거름이 되었다.

 

 

이 탁발선비가 고구려사초에 등장하는 색두(索頭)이며,

탁발선비는 310년에 <탁발의려拓跋猗盧>가 대(代)나라를 세우며

386년에는 <탁발규托跋珪(372-408)>가

훗날 북중국을 통일하는 대업을 이룬 북위(北魏)를 세워 호한(胡漢)융합을 이룬다. 

 

 

 

참고

 

성락(盛樂) : 내몽고 허린거얼(和林格尔)

                 내몽고 수도인 후허하오터 남쪽 50km 정도에 위치한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