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지36년 계묘(AD.223)

 

2월, <길선吉宣(172-226)>을 상좌평으로 삼고 군사에 관한 업무를 맡겼다.

 

<길선>의 여동생{勿씨}과 딸{田씨}이 우리에게 시집와서

대택(大宅)과 처첩(妻妾)을 양국에 두고 일정하지 않는 시기에 왕래하였다.

 

신라의 새로운 왕(新君, 아달라)이 <길선>을 의심하여 중용하지 아니하였다.

 

<길선>은 스스로 지마의 손자{실제로는 외손자}라 하여,

당시의 왕에게 자못 불궤(不軌, 역모)한 마음이 있었다.

 

왕이 경계하여 말하기를

 

“왕은 하늘이 내린 것이다.

사람의 힘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망동(妄動)하지 않음이 옳도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전씨가 힘써 권하는 바대로 하기를 허락하여, 동로군사를 위임하였다.

 

<길선>이 크게 기뻐하며 돌아갔다.

 

 

아달라왕 12년(AD.224)

 

10월 <길선吉宣>이 모반한 일이 드러나, 부여(夫余)로 도망갔다.

 

왕이 부여에게 <길선>을 바치라고 명하였으나 부여가 듣지 아니하였다.

 

왕이 크게 노하여 <대해大解>를 장수로 하여

서로군(西路軍)으로 부여를 치도록 명하였다.

 

<길선>은 <길문吉門>의 손자로, <밀화密華>의 아들이다.

 

그의 딸이 부여로 시집보내어, 이에 부여의 좌평(左平)이 되었다.

 

부여의 골녀(骨女)에게 장가를 가서 자녀 10여인을 낳고,

부여의 도읍에 넓은 저택을 두었다.

 

왕이 괴이한 계책을 의심하여, 병사에 관한 일을 맡기지 않았다.

 

이때에 이르러 결과적으로 반역하여 양국이 화친을 잃게 되었다.

 

 

구지38년 을사(AD.225)

 

10월 <길선吉宣>의 일이 실패하여 도망하여 돌아왔다.

 

신라왕이 <길선>을 불러들이려 하였다.

 

왕이 답하여 말하기를

 

“신하로써 충성을 다하지 아니함은 틀림없이 죄를 줄만합니다.

그의 딸이 소국(小國, 백제)의 내군(內君, 왕후)이니

한명의 목숨을 빌려주시면(용서해주시면) 소국으로서는 다행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신라왕이 화가 나서 듣지 아니하고,

장수 <대해大解>를 보내어 침략하였는데 불리하여 돌아갔다.

 

 

아달라왕 13년(AD.225)

 

정월, 왕과 내후(內后)가 남도(南桃)에서 조회를 받았다.

 

잔치를 벌려 군신들이 모두 취하여 왕의 앞에서 춤을 추었는데,

<흥선興宣>이 홀로 술을 마시지 않고 여자와 놀지도 않았다.

 

왕이 연유를 물으니, <흥선>이 아뢰어 말하기를

 

“우리나라는 신(神)이 나라를 세우고, 안으로는 반신(反臣)이 없었으며,

밖에서도 나라를 업신여김이 없었는데,

지금 흉적(凶賊) <길선吉宣>이 없어지지 않고 나라 밖 부여에서 살면서

낭심(狼心)이 있으니, 어찌 이처럼 술을 마시는 시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왕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그 작위를 올려주려 하였다.

 

<흥선>이 말하기를

 

“공이 없는데 작위를 올려주면, 곧 군신의 마음을 잃게 됩니다.

원하건대 신을 시험하시어 서로(西路)로 보내주시고,

공을 세우기를 기다렸다가 작위를 올려주셔도 늦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그리하여, 이에 <흥선>과 <판실板失>을 서로군사로 삼았다.

 

이로써 군사를 벌이어 정비하였다.

 

 

5월 <길선吉宣>이 부여(夫余)에서 죽었다.

 

부여의 임금 <구지仇知>가 태공(太公)례로 장사를 지냈다.

 

<길선>의 딸 전씨(田氏)는 구지의 처로 총애가 있어,

구지의 딸 백씨(苩氏, 백제왕기의 백화)를 <길선>에게 시집보냈다.

 

<길선>이 죽자 그의 아들 <팽선彭宣>이 이에 백씨에게 장가들어 처로 삼았다.

 

이전에 백씨와 그의 모형(母兄, 백제왕기의 백인, 구지왕의 아들)과 사통(私通)하여

(백화가) <팽선彭宣>과 좋게 지내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았다.

 

<구지>가 이에 백화의 모형(母兄, 백인)에게 바깥의 군대를 살펴보도록 명하였다,

 

형(兄, 백인)이 불평하여 난을 일으키려 하였다.

 

구지의 동생 <고시古尸> 또한 전씨와 잠통(潛通)하여 아들을 얻었다.

 

전씨의 아들 소고(素古, 초고왕)가 당시 구지의 태자여서,

그 자식들이 불평함이 많았다.

 

<고시古尸>가 홀로 지키고 있었다. 전씨가 <고시古尸>의 충성을 맹세 받고,

나라 안의 군국대사(軍國大事)를 <고시>에게 맡겼다.

 

전씨와 <고시古尸>와 <팽선彭宣>이 <구지>를 가두고, 나라의 정사를 오로지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지>가 죽어, <소고素古>를 왕으로 세웠다.

 

전씨와 <고시古尸>가 정사를 오로지 하고,

<백화>의 모형(母兄, 백인)은 드디어 말갈(末曷)로 도망가게 되었다.

 

 

6월 부여(夫余)의 달솔(達率) <연다燕多>가 와서 항복하여 작위를 내렸다.

 

<연다>가 와서 보고하여 말하기를 <고시古尸>가 왕을 시해하고,

적자를 쫓아내고 숨기어 발상(發喪)을 하지 않으니

정병(精兵)을 얻기를 청하여 원수를 갚고자 한다하였다.

 

왕이 중신에게 의논하도록 명하였으나,

모두 허실을 알지 못하니 움직일 수 없다고 말하여 그치도록 하였다.

 

 

 

구지39년 병오(AD.226)

 

5월, 상좌평(上佐平) <길선吉宣>이 죽었는데 나이 55세였다.

 

왕이 애통해하며 태공례(太公禮)로 장사를 지냈다.

 

<길선>의 아들 <팽선彭宣>은 전씨의 오빠다.

 

왕이 <백화苩花>를 <팽선彭宣>에게 시집보냈다.

 

<팽선>이 <백화>와 그의 오빠 <백인苩仁>이 밀통하여

신을 박대한다고 하소연하였다.

 

왕이 <백인>에게 밖으로 나가 북한군(北漢軍)을 살피도록 명하였다.

 

<백인>이 말하기를

 

“아바마마가 전씨(田氏)에게 미혹되어, 아들과 동생들을 가벼이 여긴다.”라고 하였다.

 

왕의 동생 <고시古尸>가 그 말을 듣고, 전씨에게 은밀히 고하여 말하기를

 

“모든 왕자들이 <백인>과 더불어 반역을 도모하고자 한다.”라고 하였다.

 

전씨가 말하기를

 

 “또 장차 어찌하면 좋을까?”라고 하였다.

 

<고시>가 말하기를

 

“일이 급하게 되었다. 거짓조서로 군사를 일으켜 먼저 제압함만 못하다.”라고 하였다.

 

전씨가 이내 밀부(密符)내어 <고시>와 더불어 행내외군사(行內外軍事)로 한다고

영(令)을 내렸다.

 

<고시>가 이에 왕을 핍박하여 궁궐 깊숙이 가두어 놓고,

소고(素古, 초고왕)를 새로운 왕으로 세워 이로써 천하에 호령하게 하였다.

 

 

<고시>는 왕의 서제(庶弟)이다.

 

그 어머니는 일찍이 왕과 잠통하여 은밀히 궁중비사(宮中秘事)를 고하였다.

 

자못 왕에게 공이 있었다.

 

왕 역시 <고시>를 사랑하여 자신의 자식처럼 여겼다.

 

<고시>는 나이가 젊고 아름다워 전씨와 은밀히 상통하여 아들 <소대素大>를 낳았다.

 

왕이 알까 항상 두려워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백인> 등이 그 일을 발설하려 하였다.

 

그런 연유로 <고시>가 먼저 사로잡으려 한 것이다.

 

<백인>이 계략이 어긋났음을 알고 말갈(末曷)로 도망쳤다.

 

 

<고시>가 이에 <전씨>와 정치를 오로지 하였다.

 

왕이 근심하고 분노하여 죽었는데 춘추 72세였다.

 

왕은 성군(聖君)으로써 일찍이 치평(治平)으로 이름이 있었다,

 

다만 여자를 좋아하여, 규문(閨門, 부녀자)의 일을 점검하지 않았으니,

끝내는 사랑하는 동생과 총애하는 처에게 제거됨을 당하니, 애석하도다.

 

 

달솔(達率) <연다燕多>와 <격섬鬲閃> 등이 <고시>를 치고자 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도망하여 신라로 귀의하였다.

 

두 번의 거사가 모의되어 <고시>가 감히 자립(自立)하지 못하고,

<소고素古(214-274)>를 세웠는데 나이 겨우 13살이었다.

 

 

휘(諱)는 소고(素古)이며, 구지(仇知)왕의 다섯째 아들이다.

 

체격이 크고(鴻大), 멀리 내다보는 식견이 있었다.

 

어떤 일에 임하여(臨事) 가벼이 결정하지 않았으며,

<고시古尸>와 전씨(田氏)가 감히 권세를 마음대로 하지 못하였다.

 

나라사람들이 그것을 칭송하였다.

 

 

 

초고1년 병오(A.D.226)

 

7월 어머니 전씨(田氏)를 높이어 태후로 하였다.

 

 

※ 참고

 

낭심(狼心) : 인정도 없고 탐욕만을 가진 사람의 마음

밀부(密符) : 병란이 일어나면 즉시 군사를 동원할 수 있도록 내리던 밀지

 

 

 

 초고의 가계도

 

 

                               吉宣(172 -226) = 彭田

                                                    |

5.仇知(155~226) = 勿氏(178-249) = 田氏(197~268)                  = 宝皐(201~257)

                       |                     |                                       |

        餘勿(197~260) 6.肖古(214~274) = 沙氏 = 宝皐(201~257) 沼(220~283)

                                                    |         |                      |

                                     7.仇首(230~264)  龜氏(229~?)      寶果(267-?)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