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대제2년{AD228}무신,

 

 

3월 요동의 <공손공公孫恭>은 그 형의 아들 <공손연公孫淵>에 의해 갇혔다.

 

<공손연公孫淵>은 태수를 자칭하고, 대신하여 그 무리를 다스렸다.

 

 

동천대제3년{AD229}을유,

 

9월엔 지진이 있었으며, 10월엔 눈이 많이 내려 다섯 자나 쌓였다. 

 

백제에서는 10월에 한천(寒泉)에서 사냥이 있었고,

 

11월엔 돌림병이 크게 돌았으며, 말갈우곡(牛谷)의 경계에 침입하였다.

 

<구수仇首>가 정병 300을 이끌고 구하러 달려갔는데,

복병이 있는 곳을 지나쳤다가 패하였다.

 

말갈이 사람과 재물 및 소와 양을 대대적으로 노략하여 돌아갔다.

 

<구수仇首>는 말갈을 풀어놓아서 생긴 일이라고 우리를 원망하였다. 

 

<吳>의 <孫權>이 칭제하고 건업(建業)으로 천도하였다.

<동양대제기>

 

 

 

겨울 10월에 왕이 한천(寒川)에서 사냥하였다.


11월에 전염병이 크게 돌았다.

 

말갈우곡(牛谷)에 들어와 사람과 재물을 약탈하였다.

 

왕은 정예군 3백 명을 보내 방어하게 하였다.

 

그러나 적의 복병이 양쪽에서 협공하여 우리 군사가 대패하였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구수왕 16년 기사>

 

 

 

229년에 말갈이 牛谷을 침범하여 많은 사람과 소와 양을 약탈하여 돌아갔는데

<동양대제기>는 백제의 구수왕이 패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229년은 백제 초고왕 4년이다.

 

<동양대제기>의 백제 기사는 후대에 누군가가

삼국사기 구수왕 16년 기록을 끼워 넣은 것이다.

 

구수왕(230-264){재위 254-263}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