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족의 여러 부족을 한데 어우른 첫 번째 영웅 <단석괴檀石槐>가

혜성같이 등장했다 조용히 사라진 다음, 선비족의 강대함은 쉽게 허물어진다.

 

그리고는 두 번째 영웅을 만나게 되니 바로 <가비능軻比能>이다.

 

<단석괴>가 181년에 죽었고 <가비능>은 235년에 죽은 것으로 기록돼 있으니,

<단석괴> 사후 대략 30-40년 후에 두 번째 영웅이 등장한 것이다.

 

<가비능>이 언제 태어났고, 언제 대인의 자리에 올랐는지는 불분명하다.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고, <가비능>은 도대체 어떤 힘으로 강력한 리더가 됐을까?

 

<가비능>이 대인(大人)이던 시대에, 중원은 <조조>의 아들 <조비>가 후한을 멸한 후

위나라를 세워 황제에 올라간 본격적인 삼국시대였다.

 

그래서 바로 <진수>의 삼국지에 <가비능>이 강성해진 이유가

간단하면서도 명쾌하게 기록돼 있다.

 

<가비능>과 부하들은 점점 강성해져 활을 가진 기병들이 10만 명이나 되었다.

 

재물을 약탈하여 얻을 때마다 모두 균등하게 분배하고

모든 사람들 앞에서 일관되게 결정하였으므로

끝내 사사로운 이익을 챙기려는 자가 없었다.

 

때문에 수하에 있는 자들이 그를 위해 죽을힘을 다하니

다른 부족의 대인들은 전부 그를 존경하고 두려워했다.

 

그러나 <단석괴>에는 미칠 수가 없었다.

<김원중 역, 진수삼국지에서 인용함>

 

 

유목민의 수장은 교역과 약탈을 통해 외부에서 물자를 조달해야 하는데

상당히 많은 약탈을 성공시켰다는 뜻이다.

 

근본적으로, 가장 기본적인 부문에서 실패하면서 리더가 될 수는 없다.

 

균등하다는 건 사회의 내부적 접착제로서 아주 중요한 것이다.

 

결합력의 근본이다.

 

물론 균등만이 살 길은 아니지만, 균등 내지 공정한 그 무엇이 공감되지 않으면

그 사회는 조만간 깨지게 된다. 

 

심각한 균열은 많은 밥의 불균등한 배분에서 가장 심하게 나타난다.

 

어쩌면, 적은 밥의 균등한 배분이 더 큰 에너지를 끌어낼 지도 모른다.

 

의사결정을 공개적으로 했다는 것은 그만큼 구성원들을 잘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공감대를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옳지 않은 이야기를 잘 설득하면 사기꾼이고,

옳은 것을 잘 설득하는 것은 진정성이나 소통의 힘이다.

 

옳은 것을 제대로 설득시키지 못하는 건 가장 위험한 무능력이고, 

나쁜 것을 설득하지 못했다는 건 대중이 현명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시간이 흘러도 일관성을 유지하였다는 건,

처음에 제시하고 채택한 원칙이 급격한 변경을 요구할 필요 없이

보편타당한 원칙이었다는 말이고, 그것을 일관성 있게 그대로 잘 유지했다는 것이다.

 

훌륭한 리더쉽이었다.

 

그 옛날 북방의 야만적인 오랑캐(?)의 무식한 우두머리는,

사서삼경 따위를 공부하지 않았어도, 일필휘지로 멋진 서예를 뽐내지 못했어도,

예라고 우기는 것들을 익힌 바 없었어도, 투명성이 강력한 힘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것이 가져다주는 강력한 통합의 힘을 잘 알고 있었다.

 

현명하고 헌신적이고 성공적인 리더에게 깊은 마음속에서부터 복종하고 연합하니

그 에너지가 급격하게 강대해지는 것이다.

 

이게 바로 유목민들이 갖고 있는 폭발적인 에너지원이다.

 

죽을힘을 다하는 건 두 가지 경우이다.

 

하나는 그걸 하지 않으면 당장 죽을 것이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마음 깊은 속에서부터 그의 말을 따르기 때문이다.

 

훌륭한 리더가 제대로 된 보훈 시스템으로 뒤를 받쳐놓고

고도의 전투력으로 단련시키니 유목민 병사의 힘이고, 

그래서 유목민에게는 영웅이 출연할 때마다 거대한 에너지를 폭발시켜

세계를 정복하곤 하는 것이다.

 

중원의 사가 <진수>가 정사 삼국지를 쓰면서,

한낱 변방의 야만적인 오랑캐 무리의 두목에 지나지 않는 <가비능>에 대해,

이런 평가를 했다는 것이 참 놀랍다.

 

그러나 <진수>의 마지막 평가는 <가비능>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가비능>은 위나라의 한 장수가 보낸 자객에게 암살을 당한다.

 

그의 운명은 여기까지였다고 할 수밖에 없다.

 

<단석괴>에 이어, 또 하나의 성공 사례를 겸한 시행착오를 보여줌으로써

선비족들은 끊임없이 집단적 교육을 받고 있다.

 

AD 235년,두 번째 영웅이 암살로 끝이 나고,

그를 중심으로 뭉쳐있던 선비족들이 연대의 힘은 또다시 급격하게 기울어진다.  

 

중원은 이때 위나라 초대황제의 뒤를 이은 두 번째 황제 <조예> 시대였다.

 

<원소>가 화북에서 한나라 최대 군벌로 큰소리를 치고 있을 당시,

그러니까 190년에서 200년에 이르는 기간에,

지역 패권자였던 <원소>의 학정과 등쌀에 못살게 된 백성들이

선비족이 사는 북방으로 도망가는 일이 많았다.

 

이들은 <원소>로부터 탈출해서 선비족 지역으로 들어가 그들과 어울려 살았던 것이다.

 

<조조>가 <원소>에 이어 그의 아들 <원담>까지 말끔하게 정벌한 다음,

유주(幽州)에 주둔하고 있을 때,

<가비능>은 <조조>에게 공물을 보내고 후한(後漢)에 대해 스스로 신하를 칭했다.

 

당시 <조조>의 북방 정벌의 기세를 감안하자면,

<가비능>은 당연히 허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얼핏 엉겼다가는 오환 꼴이 날 것이니 말이다.

 

그 후 220년 <조조>가 죽고,

<조비>가 껍데기뿐이던 한나라 황제를 폐하고 자신이 황제에 오르자,

<가비능>은 다시 <조비>에게 말(馬)을 바친다.

 

221년에는 선비족의 지역에 도망와서 살던 한족 5백여 가구를 위나라도 돌려보낸다.

 

그 다음해인 222년에는 3천여 기병을 인솔하고 소와 말 7천여 두를 끌고 와서

위나라와 교역을 한다. 이런 시장을 호시(互市)라고 하였다.

 

북방과 장성 이남의 공식적인 국경무역 시장을 연 것이다.

 

그리고 또 다시,

북방으로 도망 와서 살던 한족 백성 천여 가구를 위나라로 돌려보낸다.

 

이때까지만 해도 위나라는 북중국에서 절대강자였고,

<가비능>의 선비족은 위나라와 선린관계를 유지했다.

 

동시에, <가비능>의 선비족 역시 쉼 없이 체력을 키워갔다.

 

<가비능>은 <단석괴>의 후예인 <보도근>의 부족들을 병탄하면서 

결국 고비사막 이남 지역을 전부 통일한다.

 

이렇게 체력을 키운 다음에는 자연스레 위나라 변경을 넘나들게 된다.

 

위나라와 <가비능>의 선비족과의 선린관계는 깨지고, 위나라는 강경대책을 강구한다. 

 

결국 위나라의 오손교위라는 직책에 있던 <왕웅王雄>이란 자가

<가비능>에게 자객을 보내고, 이 자객은 임무를 성공하여 <가비능>을 살해한다.

 

첫 번째 영웅 <단석괴>는 자연사했고,

두 번째 영웅인 <가비능>은 덧없이 암살을 당한다. 

 

부족연맹의 총수인 <가비능>이 죽자 

또 다시 선비족들은 원래대로 부족들이 산재하던 상태로 돌아간다.

 

부족연맹이 허물어진 것인데, <가비능>의 권위와 힘,

그의 에너지와 자리를 누군가가 이어받을 준비는 아직 안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때 동부 지역에 있던 선비족 가운데,

우문(宇文)부와 단(段)부, 모용(慕容)부가 세력을 키우면서 남과 서남으로 내려온다.

 

그리고는 당초에 오손이라는 북방민족이 살던 지역을 삼켜버린다.

 

우문(宇文), 단(段), 모용(慕容)은 모두 선비족의 성씨이다.

 

우문(宇文)씨는 나중에 북위가 수.당으로 넘어갈 때

우문(宇文)씨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우문(宇文)씨, 모용(慕容)씨는 단성(單姓)이 아니라 복성(復姓)이다.

 

나중에 등장하는 <우문태宇文泰>는, 이름이 문태(文泰)가 아니라 태(泰)이다.

 

이 우문(宇文)씨는 본래 선비족이 아니라 흉노족이다.

 

이들은 언제부터인지 명시하기는 어렵지만,

동쪽으로 이동해서 선비족과 잡거를 하게 됐다.

 

잡거(雜居)란, 한곳에 같이 산다는 뜻이다.

 

이런 과정에서 점차 선비와 흉노의 피와 문화와 기질이 섞여졌고,

<단석괴> 시절에 <단석괴>의 부족연맹에 복속하면서 완전히 선비화된 부족이다.

 

유목민들은 이동하면서 살다가, 어떤 사정이 생기면 누군가와 잡거를 하고,

잡거를 하면서 자연스레 섞이고 합쳐지고 융합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기운을 보충하며 역사를 걸어가는 것이다.

 

북방의 유목민은, 증류수와 같은 존재가 아니라 계곡을 흐르는 물과 같다.

 

때로 흙탕물이기도 하고, 때론 맑은 물이기도 하다.

 

때론 격류가 되어 계곡 양안을 거칠게 할퀴며 흐르고,

때로는 고요한 실개천으로 흐르기도 한다.

 

선비족도 깔끔하게 정리된 일군의 선비족들이,

처음부터 우리들은 선비족이라고 선언하고 나선 것이 아니다. 

 

자잘한 바람이 얼키고 설키다가 내부 에너지를 축적하면서

점점 더 큰 바람으로 융합되고 합쳐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미미했으나 주변의 부족들과 먹고 먹히기도 하고,

결합해서 융합하기도 하면서 선비라는 말로 지칭하게 됐고,

남으로 남으로 이동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부락들이 합쳐지면서 성립된 것이다.

 

어찌보면 잡탕과도 비슷하고, 퓨전 워터랄까 그런 존재들이다. 

 

북방 유목민족이란 물은 온갖 것들이 섞인,

그러나 그 안에는 풍부한 미네랄이 농축된 살아있는 물이다. 

 

결코 순수함을 빙자하여 H2O만이 뭉쳐진 증류수가 되려는 어리석은 물이 아니다.

 

이 우문부의 역사에서도,

선비족 전체의 역사에서도 그런 역동적인 융합이 일어나는 면모를 수없이 보게 된다.

 

이런 역동적 융합의 정점은, 

북방의 호(胡)와 장성 이남의 한(漢)이 한곳에 잡거하면서,

문화와 핏줄과 정신세계까지도 합쳐지는 호한융합(胡漢融合)이다. 

 

이 선비족의 역사는 남북의 정면대결에서 호한의 융합이란

새로운 블루 오션을 찾아가는 길이었고, 

아무튼 이렇게 해서 <가비능>의 시대는 아쉽게 끝이 난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