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대제10년{AD236}병진,

 

 

춘2월, <손권>의 사신 <호위胡衛>가 찾아와 배알하며 화친을 청하였다.

 

그 언사가 심히 방자하고 예물 또한 야박하였더니,

 

상이 화가 나서 <호위>에게 이르길

 

“너희 왕은 <공손연>은 끔찍이도 섬기면서, 짐을 섬기는 것은 어찌 이리도 야박한가?”

라 하자,

 

<호위胡衛>는

 

“예물은 여러 번의 풍파로 인하여 물에 빠뜨렸음이고,

마음의 뜻은 <공손연>에게 함과 하나같았습니다.”라고 아뢰었다.

 

이에 상이 이르길

 

“지난해에 <진단秦旦>과 <황강黃彊>이 나를 속이더니,

너도 다시 그러는 것이냐?”라 하고는,

 

옥에 가두어 다스리라 명하였다.

 

태보 <식부息夫>가 병든 몸으로 들어와서 간언하였더니,

<호위胡衛>를 현도(玄兎)에 안치하고 지키라 하였다.

 

<호위胡衛>는 도주하다가 <공손연>에게 잡혀서 죽었다.

 

함께 왔던 <주선周仙>은 나이가 어린데도 우리말에 능통하여

<주통朱通>의 가신으로 삼았더니, 태보 <목신穆臣>이 역시 간언하기에 풀어주었다.

 

 

 

고구려 15대 미천대제가 봉상을 제거하고 제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일등공신 <선방仙方(257-320)>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을불乙弗>이 체포되어 끌려갈 때 그를 구출해준 것도,

궁중에 혼란스러움을 야기하여 봉상을 미쳐 돌아가게 만든 것도,

을불반정의 성공을 주도적으로 이끈 인물도 다름 아닌 <선방仙方>이었다.

 

잠시 고구려의 제위를 찬탈할 꿈도 꾸었던 자이자 周황후의 아버지였다.

  

그 <선방仙方>의 선조가 삼국지에 나오는 <주유周瑜(175-210)>의 후손이다.

 

<선방仙方>의 아버지는 <선결仙潔 (237-308)>이고.

<선결仙潔>의 아버지는 <주선周仙 219-?)>이고.

<주선周仙>은 바로 <주유周瑜>의 서손(庶孫)이었다.

 

<주유周瑜>의 서손인 <주선周仙>이 고구려를 방문하게된 것은 서기236년

오나라가 고구려에게 사신을 보냈을 때 그 일행 중 하나였다.

 

사신이었던 <호위胡衛>가 동천대제의 노여움을 사 현도에 유배될 당시

18살의 <주선周仙>은 나이도 어린데다 고구려말도 능통하고 잘 생겼기에

집법령(執法令) <주통朱通>이 몰래 자신의 집에 빼돌려 용양신(龍陽臣)으로 삼았으며

이후 <주선>은 고구려에서 <주통>의 가신으로 살아간다. 

  

<주유>는 미주랑(美周郞)이란 별명을 얻을 만큼 용모가 수려하였다고 한다.

 

비록 서손이지만 <주선>은 할아버지 <주유>를 닮아 잘 생기다보니

<주통>의 처인 우씨(于氏)가 그를 유혹하여 둘은 사통하여 <선결仙潔>을 낳게 된다.

 

<선결仙潔>은 똑똑하고 박식하였으나

吳나라 출신이라는 차별로 중용되지 못하고 있을 때

그 설움을 잘 아는 신라인 어머니 <옥모玉帽(238-311)>와

중천대제 <연불然弗(224-270)> 사이에서 태어난 안국군 <달가達賈(256-292)>가

그를 기용하게 되고 양맥(梁貊)과 숙신(肅愼)정벌에 큰 공을 세우게 된다.

  

<달가達賈>와 <치갈雉葛(259-301){봉상제}>이 경쟁할 때

<선결>은 먼저 <치갈>을 치고 <을불>의 아버지인

<돌고咄固(260?-293)> 태자를 옹립하려 하였지만

의(義)를 앞세운 <달가>가 말을 듣지 않자 변방지역인 마산(馬山)으로 물러나

거기서 큰 재산을 형성하게 된다.

  

고구려가 봉상제의 실정으로 혼란에 빠지고 <을불>을 추적하고 있을 때

<선결>은 아들 <선방>을 시켜 <을불>을 지원하게 되고

마침내 <을불>을 제위에 올려놓는 일등공신이 된다.

 

<선방>의 딸 <거지居知(291-359)>는 미천대제 <을불>의 소후(小后)를 거쳐

황후가 되었으며 그들의 옛 성씨인 周씨를 돌려받게 된다.

  

마산공(馬山公)으로 봉해진 <선결>은 매우 신중하고 겸손한 인물로

공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지냈으나 그의 아들 <선방>은 그와는 반대였다.

 

아버지 <선결>이 나서지 말라고 타일렀지만 결국 그는 동생인 <선담仙淡>으로 하여금

당시 정벌한 낙랑왕 <자술子述>의 딸을 취하게 하여 낙랑을 장악한다.

 

자신의 터전인 마산과 낙랑을 취하여 장차 고구려를 장악할 음모를 꾸민다.

  

미천대제 10년(서기309년)에는 태보(太輔)가 된 <선방仙方>을 필두로

이들의 가족들이 좌보(左輔)를 제외한 고구려 정권의 주요자리를 차지하게 되자

<선방>은 5부를 장악하고 반정을 꿈꾸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의 음모를 알고 있던 딸 周후가 이를 제지하며

<선방>을 강제로 마산(馬山)으로 돌아가게 하고

<선방>이 임명한 5부의 사자 10명을 모두 없애버렸다.

 

아버지와는 달리 딸은 <주유>의 피를 물려받아 나라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였나 보다.

  

하지만 <선방>은 머지않아 다시 태보의 지위를 회복하였고

이후 미천대제14년(서기313년) 낙랑정벌을 주도하고는

낙랑왕이자 태공(太公)으로 봉하여지게 된다.

 

비록 그가 꿈꾸던 고구려의 제위는 차지하지 못하였지만

고구려에 그의 후손들을 자리 잡게 하였고 드디어 낙랑왕의 지위에 오른 것이다.

  

서기 320년 그도 마침내 숨을 거두는데

남당유고 <고구려사초>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二十一年 庚辰 正月 樂浪王仙方薨

上哭哀之曰 昨年仙玉戰死 今春亞父棄我 何奪朕股肱之甚乎

命槨返葬于馬山 上與周皇(后)親臨立祠

  

方 美風儀 有權術 能愛人下 士中興帝業

而仍欲簒奪 爲周皇后所沮 遂知天命所在 務進南西事未成而薨 年六十四

  

尙多精力 而惑於樂浪少女 而沈疾遽劇 人多惜之

方 能知大體 而不識禮節 烝乙太后如其妻

太后臨崩 命方殉之 上以其爲重臣 不可殉於小節而止之

  

夢太后責其負約 心常缺然

至是 夢見太后怒 拔其根而病劇

樂浪女亦暴死 人以爲太后靈

  

미천대제 21년(서기320년) 경진 정월, 낙랑왕 <선방>이 죽었다.

 

상이 곡하여 슬퍼하며 말하길

 

“작년엔 <선옥>이 전쟁 중에 죽더니, 이 번 봄에는 아부(亞父)가 나를 버리는구나.

어찌 짐의 소중한 중신들을 다 빼앗아 가는고?”

 

<선곽仙槨>에게 마산에 반장(返葬)하라 명하였다.

 

상과 주 황후가 직접 임하여 사당을 세웠다.

  

<선방>은 풍의(풍채)가 아름다웠고,

권모술수가 있어 아랫사람을 잘 아꼈으며, 중흥제업에 종사하였다.

 

그러나 찬탈을 꿈꾸었던 것으로 인하여 주황후에게 저지당하였고

마침내 천명이 있는 곳을 알아 남서쪽의 일에 힘쓰다 이루지 못하고 죽었으니

나이 64세였다.

 

정력이 좋음을 자랑하다가,

낙랑소녀에게 미혹되어 병이 들고 갑자기 심해졌더니

많은 사람들이 이를 애석해 하였다.

 

<선방>은 일의 큰 줄거리는 잘 파악하였으나,

예절을 알지 못하여 乙태후(261-318)를 증(烝)하고 자신의 처와 같이 대하였다.

 

태후가 죽음에 이르러 <선방>에게 따라 죽으라고 명하였으나,

상이 그가 중신이기에 대수롭지 않은 예절을 따라

죽어서는 안 된다고 하여 그를 막았다.

  

태후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책하는 꿈을 꾸어

마음이 항상 결연(모자라 서운함)하였다.

 

근자에는 태후가 노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그의 생식기를 뽑아버리는 꿈을 꾸더니 병이 심하여졌었다.

 

낙랑 여인 또한 갑자기 죽었으니, 사람들은 태후의 영령이 그리하였다고 생각하였다.

 

 

<선방>은 서기 257년 <선결>과 <구우>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미천대제 10년 태보가 되면서

조상의 성인 주씨(周氏) 성을 하사받아 다시 주씨가 되었다.

 

처인 <면대免大>의 딸 <거지居知>는 미천대제의 황후가 되었으며

그녀가 낳은 아들 <사유斯由(311-371)>는 고국원제가 된다.

 

<선방>의 아들로서 <선곽仙槨>이 있었는데 그의 딸 또한 고국원제의 황후가 된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