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대제11년{AD237}정사,

 

춘3월, <류흔劉昕>・<선우사鮮于嗣>・<오림吳林> 등이

대방・낙랑 등의 작은 나라들을 침략하니, <공손연>은 안팕으로 함께하였다.

 

<공손연>은 스스로 燕왕을 칭하고 교만하며 거드름을 피웠다.

 

이에 상은 魏에 사신을 보내어 <공손연>을 토벌하는 계획을 상의하였다.

 

魏는 <관구검毌丘儉>을 유주(幽州)자사로 삼아서,

선비・오환과 함께 요대(遼隊)에 진을 치고 <공손연>을 응징하게 하였더니,

<공손연>이 {먼저} 나와서 이들을 격파하였다.

 

<관구검>은 다시금 싸우고 싶었으나,

큰비가 열흘이나 내려서 <요수(遼水)>가 넘실대니,

군사를 잃을까 겁나서 우북평(右北平)으로 철수하였다.

 

우리 군대가 이 허를 틈타 현도(玄兎) 서쪽의 땅 백 여리를 취하였다.

 

 

초고12년 정사(AD.237)

 

5월 대방왕(帶方王) <공손연公孫淵>이 나라이름을 연(燕)으로 고쳤다.

 

한병(漢兵, 조조의 위병)을 대천하(大川河)에서 크게 물리쳤다.

 

왕이 사신을 보내어 축하하였다.

 

사씨(沙氏)가 왕의 딸 <구내仇嬭>를 낳았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