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휴왕 10년(AD.253)
6월 왜(倭)에 큰 기근이 있어 남녀 천여 명이 배를 타고 와서 식량을 구걸하였다.
남쪽 시골 한가로운 땅에 살도록 명하고 식량과 일자리를 주었다.
이것이 왜포(倭圃, 왜인들의 채마밭)이다.
<작평(作平)>과 이름을 나란히 하였다.
<작평(作平)>은 아달라왕 때 과수원 관리를 잘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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