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 浦上八國의 亂

고대사 2014. 9. 11. 07:23

 

 

내해왕 14년(AD.270)

 

7월 가야(加耶)왕자 <우고于考>태자가 들어와 고하기를

포상8국(浦上八國)이 (가야를) 침입하였으니 구하기를 청하였다.

 

이에 <우고于考>와 <이음利音(226-290)>을 장수로 하여

6부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하였다.

 

8월 <이음利音>이 부딪쳐 8국의 장군을 죽이고

포로가 된 6천명을 빼앗아 (가야로) 돌려보냈다.

 

군신(群臣)들이 치하하며, 포로들을 조상의 사당에 바쳤다.

<박창화 필사본 내해기>

 

 

내해왕 14년(209년)

 

7월 바닷가의 여덟 나라(浦上八國)가 공모하여 가라(加羅)를 침범하자,

가라 왕자가 구원을 요청했다.

 

왕이 태자 <우로于老>와 이벌찬 <이음于老>에게

6부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게 하였다.

 

그들은 여덟 나라 장군을 죽이고, 포로 6천 명을 잡아 돌아왔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산상대제13년{AD209}기축,

 

5월, <우>후가 사람을 시켜서 <후녀>를 죽이려고 <상관> 등과 싸웠는데,

상호간에 살상자가 있었다.

 

상이 <후녀>를 맞아 후궁으로 들였다. 

 

 

7월, 포상8국이 가야를 침범하니, 가야는 신라에 구원을 청하였고,

신라는 <내음>을 시켜 돕게 하여, 포상8국의 장수들을 쳐 죽이고,

사로잡혀갔던 가야 사람 6천명을 되찾아 주었다. 

 

<공손강>은 둔유 이남의 땅을 차지하고 대방국이 되었다. 

 

9월, <후녀>는 아들 <교체>를 낳고 소후가 되었다. 

<고구려사초 산상대제기>

 

 

산상대제16년{AD212}임진

 

4월, <주통궁>소후와 <교체>태자를 데리고,

서쪽을 순시하며 백성의 안위도 묻고 열병도 하였으며,

온천에서 닷새를 놀다가 돌아왔다. 

 

이해 3월에 가야가 신라에게 아들을 인질로 보내고는 원수를 갚아주길 청하였더니,

신라는 <내음>을 시켜서 <보라><고자><사물><초팔><골포><칠포><가리><성산> 등의 나라를 쳐서 항복시켰다.

 

<물계자>의 공이 최고였으나 아무런 보상도 해주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따져보라고 권하였더니,

 

“신하 된 사람은 충성하여 나라 안의 일을 분담하는 것이오.

어찌 보답을 바란단 말이오?"

라 말하여 물리치고 돌아보지 않았다.

 

나라사람들도,

그를 현명하다고 여기고, 원통함을 벼랑에 내어 걸고는 묻지는 않았다.

 

하늘이 큰 비를 내려 집들이 물에 떠내려갔더니,

모두들 그 일로 인한 재앙이라 여겼다. 

<고구려사초 산상대제기>

 

 

포상팔국의 난은 209년이 아닌 270년에 일어난 사건이다.

 

고구려사초 산상대제기 13년(209년) 7월 기사와  16년(212년) 4월의

포상팔국에 대한 기사는 후대에 누군가에 의하여

삼국사기 신라기년을 맞추기 위하여 가필하여 끼워 넣은 기사이다.

 

산상대제기 16년 기사는 4월 기사 다음에 3월의 기사를 가필하여

자연스러운 사초기록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음利音(226-290)>은 <아달라>와 <자황>사이에서 226년에 태어났다.

 

<내음奈音>은 <이음利音>의 친형으로 220년생이다.

 

209년에 포상팔국의 난이 일어났다면

<이음>과 <내음>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이음>은 270년에 45살의 나이로

가야의 태자 <우고于考>와 함께 전장에 나간 것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가야 태자 <우고于考>를

<내해>의 아들 <우로于老(277-331)>로 바꾸어 놓았다.

 

이때 <우로于老>도 태어 나지도 않았다.

 

 

포상팔국의 난이 일어난 과정을 정리해 보자.

 

250년, 8월  부곡전투에서 백제가 승리하자 백제와 신라의 눈치를 보고 있던 대가야는

                  백제의 편에 붙음.

 

261년, 4월  백제의 구수왕이 사교역 금지령을 내림

 

262년, 2월  대가야는 신라와 화친을 하게 됨

 

267년, 3월  백제 고이왕이 포상8국과 통모 함.

같은 해 10월 신라의 <길두>가 가야에 사신으로 파견감.

 

268년, 5월 <술명>이 2차적으로 가야에 사신으로 파견 감.

 

269년, 4월 포상팔국이 신라의 변경을 침입함. <이음>이 격퇴시킴.

 

270년, 7월 포상8국이 가야를 침범하여 포로 6천명을 잡아감.

                가야의 <우고>태자가 신라에게 구원을 요청함.

                <이음>이 6부의 군사를 이끌고 구원함.

같은 해 8월 <이음>이 포상8국의 장군들을 살해하고,

                 포로가 된 6천명을 빼앗아 가야로 돌려보냄.

 

273년 3월  포상팔국중 3국, 골포국(마산), 칠포국(칠원), 고사포국(고성)이

                갈화성(울산)을 공격함. 가야 왕자를 인질로 삼음

 

포상팔국의 난이 일어난 배경은 백제의 사교역 금지로 인하여 대가야가 배반하여

신라와 화친하게 되니 백제 고이왕은 포상팔국과 공모하여 대가야를 고립시키게 된다.

 

이에 불안을 느낀 대가야는 신라와 연합하여 포상팔국을 정벌하게 된 것이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