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11년 갑오(AD.274)

 

7월 신라 요거성(腰車城)을 공격하여 빼앗고 그곳의 성주를 죽였다.

 

신라의 병사가 사현성(沙峴城)을 침입하였으나 물러났다.

 

 

9월 북부의 <진과眞菓>에게 명하여 말갈을 공격하여 석문(石門)을 취하였다.

 

10월 말갈이 술천(述川)에 침입하여 격퇴(擊退)하였다.

<백제왕기>

 

 

내해왕 19년(AD.275)

 

7월 <선권仙權>을 이벌찬, <홀인忽仁>을 품주로 하였다.

 

부여(扶余)가 요거성(腰車城)을 공격하고 성주 <설부薛夫>를 죽였다.

 

<이음利音 228-281>에게 명하여 정병(精兵) 6천을 거느리고 가 부여를 쳐서

사현성(沙峴城)을 격파하였다.

<내해왕기>

 

 

초고왕 39년(204년)

 

7월에 군사를 내어 신라의 요거성(腰車城)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성주 <설부薛夫>를 죽였다.

 

신라 왕 <내해奈解>가 노하여 이벌찬(伊伐) <이음利音>을 장수로 하여

6부의 정예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우리의 사현성(沙峴城)을 공격하였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내해 19년(214년)

 

7월 백제가 나라의 서쪽 요거성을 공격하여 성주 <설부>를 죽였다.

 

왕이 이벌찬 <이음>으로 하여금 정병 6천을 거느리고 백제를 치게 하여,

사현성(沙峴城)을 격파하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백제 장수 <진과>와 신라장수 <이음>의 요거성 전투를

삼국사기 백제본기는 초고왕 39년, 204년에 일어 난 것으로,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내해왕 19년, 214년에 일어 난 것으로 기록하였다.

 

그러나 요거성 전투는 275년에 일어난 사건으로 이때 이음의 나이는 50세였다.

 

고이왕은 270년 2월에 말갈의 침입에 대비하여

적현(赤峴)사도(沙道) 두개의 성을 쌓고, 동부 사람들에게 지키도록 명한다.

 

여기서 말갈은 고구려의 변방 군사이다. 

 

270년 7월 포상팔국의 난이 일어나자 <이음>이 대가야 태자 <우고>와 함께

포상팔국을 평정하고 한반도 서 남해 지역까지 진출하게 된다.

 

신라의 한반도 서 남해 진출에 불안을 느낀 백제 고이왕은 <진과>를 출병시켜

274년 7월 신라의 요거성을 공격하여 요거성 성주 <설부>가 패전하여 죽게 된다.

 

신라는 <이음>이 정병 6천을 거느리고 백제의 사현성을 공격한다.

 

요거성사현성은 사벌국(상주)에 있던 城이다.

 

신라와 백제의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자 말갈이 백제의 동북부를 침공하게 되고

백제는 말갈의 침공을 술천에서 격파하게 된다.

 

276년 8월 말갈이 다시 백제의 석현성을 공격하계 되고 백제는 이를 또다시 격파한다.

 

술천성석현성은 백제의 동북부지역에 있던 성이다.

 

말갈과 신라가 공조하여 백제를 공격하고 백제는 가야와 공조하여 신라를 공격하는데

대가야가 백제를 배신하니 가야연방인 포상팔국과 백제가 신라를 공격하게 된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