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23년 병오(AD.286)

 

2월 고구려가 대방(帶方)을 치자 대방{대방왕 건虔}이 구하기를 청하였다,

 

왕이 태자에게 대방을 구하도록 명하였다.

 

고구려가 우리를 원망하여, 장차 변경을 침략하고자 하였다.

 

이에 정부(丁夫)를 징발하여

위례성(慰禮城)과 아단성(阿旦城)과 사성(蛇城)을 수선하고 지붕을 이어 대비하였다.

 

11월 왕이 죽어 태자 <책계責稽>가 섰다.

 

왕은 태왕(太王){초고왕}의 총애를 받은 아들이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으며 백성을 사랑하였다.

 

일찍 일어나 밤늦게 잠을 자고

말단 관료까지의 근검함을 국가의 다스림의 근본으로 삼았으며,

항상 바깥의 도적들을 근심하여, 언제나 편안히 살지 못하고 춘추 52세에 죽었다.

 

나라사람들이 애통해 하였다.

 

 

책계왕[혹은 청계라고도 한다.]은 고이왕의 아들이다.

 

체격이 장대하고 의지와 기품이 걸출하였다. 고이왕이 사망하자 그가 왕위에 올랐다.

 

왕이 장정을 징발하여 위례성을 보수하였다.

 

고구려가 대방을 치자 대방은 우리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앞서 왕이 대방왕의 딸 <보과>를 부인으로 맞이하였기 때문에 왕이

 

"대방은 우리와 장인과 사위 관계의 나라이니, 그들의 요청을 들어 주어야 한다"

고 말하고,

 

마침내 군사를 출동시켜 구원하였다.

 

고구려에서 이를 원망하였다.

 

왕은 고구려의 침략을 염려하여 아단성과 사성을 수축하여 방비하게 하였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