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국군 <달가達賈>의 죽음과 <을불乙弗>의 도망
서천대제23년{AD292}임자,
2월, 상이 서천궁(西川宮)에서 갑자기 죽었다(暴崩).
춘추 53세였고, 서천릉(西川陵>에 장사하였다.
제(帝)의 휘(諱)는 <상부相夫> 또는 <삽시루歃矢婁>이고,
초호(初號)는 <치갈雉葛(259-301)>태자로서 서천제의 맏아들이고,
모친은 <우수于漱>의 딸인 <우于>태후{우오두于五斗(243-303)}이다.
성품은 교만하기로 빼어났고, 색을 밝혔으며, 시기하는 것이 많았고, 매우 잔인하였다.
그리하여 서천제는 오래도록 나라를 물려줄 생각이 없었는데,
(서천제가)갑자기 죽었다.
<우于>后가, 거짓조서로써 제를 세우고
안국군에게서는 병권을 빼앗아 자신의 형제들에게 넘겨주었다.
나라사람들이 이를 탄식하며 한숨지었다.
<고구려사초>
신라의 핏줄을 이어받은 안국군 <달가達賈>가 숙신(肅愼)을 정벌한 이후
군권(軍權)을 장악하게 되자 <치갈>{봉상제}의 무리들은 그를 경계하였다.
<달가達賈>는 <돌고咄固>를 지원하였고
서천제에게 <치갈雉葛>에게 제위를 넘겨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며
서천제와 <치갈雉葛>의 사이를 갈라 놓는다.
서천제의 마음은 서서히 <치갈>에서 멀어지기 시작한다.
<치갈>을 좋지 않게 생각하던 <달가>는 <치갈>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였고
이에 불만을 품은 <치갈>은 제위에 오르면 <달가>를 죽일 것을 결심한다.
<달가>, <돌고>, 그리고 <을불>을 중심으로 한 무리들과
<치갈>과 <于后>를 중심으로 한 무리들의 대립은 날이 갈수록 심화된다.
폭붕(暴崩)이라는 표현은 시해(弑害)당했을 경우에 쓰는 필법이다.
于后와 <치갈>의 무리들은 마침내 시해(弑害)라는 방법을 택했고 성공하였다.
적통(嫡統)으로 당연히 제위를 이어받을 <치갈>이 정변을 일으킨 것이다.
元年 壬子 三月 詔曰 安國君達賈 素以他族庸品 敢窃兵權累危 朕躬其賜死籍其家
初 達賈之臣仙潔勸除雉葛而不聽
至是 其臣以竟又勸出奔新羅 而不聽曰 吾欲殉先帝遂從容而盡
<고구려사초>
원년(AD292)임자
3월, 조서에 이르기를
“안국군 <달가>는 바탕이 다른 족속의 비천한 자인데
감히 병권을 도둑질하여 계속 위태로웠도다.
짐이 죽음을 내리고 그 집안을 몰수한다." 라고 하였다.
옛날에 <달가>의 신하 <선결>이 <치갈>을 제거하라고 권하였으나 듣지 않았었는데,
이제 그 신하 <이경>이 또 다시 신라로 달아나라 권하였지만
<달가>는 듣지 않고 말하기를
“나는 선제(先帝){서천제}를 따라 죽고자 한다."
라 말하고 마침내 조용히 죽음을 택하였다.
마침내 <달가>는 자결하고 이듬해 <돌고>마저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갑자기 변한 상황에서 <을불>은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멀고도 험한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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