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상제2년{AD293}계축,
8월, <모용외>가 환성(桓城)에서 쳐들어와 노략하니,
상은 신성(新城)으로 가서 적을 피하고 싶어 곡림(鵠林)에 다다랐더니,
<모용외>가 이를 알아채고는 쫓아왔다.
장수들과 신성(新城)의 우두머리인 <고노자高奴子)가
적을 맞아 크게 싸워서 쳐부수었다.
<노자奴子>는 본시 고(高)씨 집안의 가신이었는데,
공을 세워 대형(大兄)의 작위를 받았으며, 곡림(鵠林)의 땅도 하사받았다.
<고구려사초>
봉상제가 등극했을 때 비록 <달가>에게는 죽음을 내렸지만
이복동생인 <돌고>대왕은 차마 죽이지 못하였다.
晉에 부용(附庸)하고 있던 모용외가 <치갈>이 정변을 일으켜 <달가>를 제거하자
군사력이 약해진 것을 기회로 삼아 고구려를 침공한다.
이들의 선조는 자몽(紫蒙)이라는 이름으로 고구려에 부용하여 오다가
이제 그 힘을 키워 晉에 부용하여 고구려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모용외>의 어머니는 乙씨로 고구려 <을두지>의 후손이었기에
<추모>의 적손을 자칭하며 스스로 서몽대왕(西蒙大王)이라 칭하였다.
<모용외>가 국내성을 공격하였다.
당연히 막아내야 할 장군 <우평于枰>이 어이없이 패하자 봉상제는 당황하였다.
병권의 책임자를 하루아침에 갈아치우니 고구려의 방어가 허술할 수밖에 없었으며
한참 세를 키우던 <모용외>의 공격에 봉상은 신성(新城)으로 피하고자 길을 떠났고
막 곡림(鵠林)에 도착할 즈음 이를 알아 챈 모용외가 곧바로 곡림으로 추격해온다.
다행히 봉상제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마중을 나오던 <고노자高奴子>가
<모용외>의 추격을 막았고 이어 <돌고>가 군사를 이끌고 <모용외>의 후미를 치니
<모용외>의 군사들은 마침내 퇴각을 하였다.
<돌고>의 도움으로 <모용외>를 물려쳤지만 <돌고>가 병권을 상실한 상태에서
봉상제의 허락없이 군사를 동원하였다는 구실로 <돌고>를 제거코자 한다.
<돌고>의 딸 <탐씨>와 상국(相國) <상루尙娄>가 사태를 수습코자 애를 써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猿項曰 咄固達賈之黨也 不可成其翼 宜以此時罪
不待詔而自來 以爲有簒逆之志
故假稱討廆 而實自有密圖者也
上曰 善 乃賜死
猿項强納咄固母高氏爲妾
<고구려사초>
<원항猿項>이 아뢰었다.
“<돌고咄固>는 <달가達賈>의 무리입니다.
그에게 날개를 달아주면 아니되옵고 마땅히 지금 죄를 물어야 합니다.
천자의 명을 기다리지 않고 마음대로 왔던 것은 반역의 뜻이 있었던 것입니다.
<모용외>를 토벌한다고 거짓으로 일컫고는 실은 은밀히 꾀하는 바가 있었음입니다.”
상이 말하기를
“옳다” 하고는 자결하게 하였다.
<원항>은 <돌고>의 어머니 <고씨>를 강제로 첩으로 만들었다.
같은 전쟁에서 같은 공을 세웠지만
<고노자>는 대형(大兄)의 작위와 곡림(鵠林)의 땅을 하사받고
<돌고>는 한 사발의 사약을 받았다.
<곡림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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