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불>이 낙랑의 땅으로 들어설 무렵,
낙랑은 내분이 일어나 각 부락들이 서로 君을 세워 독립을 꾀하던 시기였다.
그 부락들 중에 최체부(最彘部)에 <선길善吉>이라는 군장이 있었다.
<선길>에게는 <창포菖蒲>라 하는 예쁜 딸이 있었고
<선길>은 장차 사위에게 자신의 部를 물려줄 생각이었다.
<을불>이 장차 황좌를 도모할 다시없는 좋은 기회였다.
<을불>이 표범가죽과 큰 거울을 <선길>에게 바치며 말하기를
자신은 고구려의 황손이며 <선길>의 딸을 후(后)로 맞이하고 싶다고 한다.
<선길>은 사냥터에서 일단 선을 보기로 한다.
<을불>이 사냥터에서 처음 <선길>의 딸 <창포>와 마주치는 순간,
두 사람은 마음이 통하여 혼인을 약속한다.
신궁(神弓) <을불>은 날아가는 고니를 쏘아 그것을 폐백으로 삼았는데
이를 기념하여 그 계곡을 곡락령(鵠落嶺)이라한다.
<을불>은 <창포>의 초대로 최체로 들어가 일주일을 함께 지내도
<선길>의 승낙은 떨어지지 않았다.
<선길>의 동생은 <을불>이 고구려에서 체포령이 발부된 자라는 것을 알고
<을불>을 붙잡아 고구려에 넘기려 한다.
<창포>가 준비해 준 준마 다섯 필을 타고 <을불>과 <재생> 일행은
밤을 틈타 막사를 빠져나와 도망하게 된다.
이 사실을 안 <선길>이 신하인 <첩서蟄蜍>를 보내어 <을불>을 뒤쫓았으나
주몽의 피를 타고난 신궁(神弓) <을불>은 그를 쏘아 죽여 버린다.
본거지로 겨우 살아 돌아온 <을불>은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마침내 삼도(三徒)를 이끌고 최체를 정벌하여
최체의 6촌(村) 2성(城)과, 양화(陽化)의 2촌, 갈부(鞨部) 1촌을 장악하여
무리 5~6천을 차지하게 된다.
이때가 서기 295년 10월 <을불>의 나이 18살 때였다.
최체라는 지역은 개마와 낙랑 사이에 있는 지역이다.
낙랑의 영동지역의 땅이기도 한 이 지역은 낙랑과 개마의 변경에 있었다.
<개마와 최체, 낙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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