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용)외는 대극성(大棘城){자몽}이 제(帝) <전욱顓頊>의 옛 터라고 여겼으므로
(혜제惠帝) 원강(元康) 4년(294년)에는 그곳으로 옮겨와 살았다.
농사와 누에치기를 가르치고 법제(法制)를 상국(上國)(晉)과 같게 하였다.
봉상제3년{AD294}갑인,
9월, <모용외>가 도읍을 환성(桓城)에서 대극(大棘){자몽, 今 풍녕현}으로 옮겼다.
<외>는 섭신(涉臣)의 후예로서 자몽에서 흥기하였고,
우문(宇文)씨와 서로 다투다가
환성(桓城)으로 남하하였더니,
오히려 그것이 화근이 되어, 다시금 대극(大棘)으로 내려간 것이었다.
그의 어미 <乙>씨가 <豆智>의 후손이었던 까닭에,
<외>는 자신을 서몽대왕(西蒙大王)이라 칭하고
동명(東明)의 적손이라 하면서 드러나지 않게 불측한 마음을 키우고 있었다.
<환성(桓城)과 대극성(大棘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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