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내신경(月嬭神經)에서 말한다.

 

황계(黃鷄: 기유 349년) 4월,

 

태제(太弟) <未仇(297-358) 각간(末仇角干)이 화림(花林)에서 깊이 잠이 들었는데

꿈에 황룡(黃龍)이 승천하며 천둥번개와 비바람이 몰아침을 보고 크게 놀라 일어났다.

 

그 때에 <휴례休禮(331-399)> 공주 또한 화림묘주(花林廟主)로서

신기둥(神楹)에 기댄 채 혼미(昏迷)한 상태였는데,

홀연 백화(百花)가 흐드러지게 피고 오색빛깔의 봉황(鳳)이 꽃 가운데로부터 나와

품속으로 날아들므로 얼싸안고 그를 보니 곧 <말구未仇> 각간이었다.

 

그 꿈을 기이하게 여기고 몰래 걸어 나와 <말구> 각간의 재방(齋房)을 엿보니

 

각간이 뛰쳐나와 (공주를) 안으며 말했다.

 

“내가 좋은 꿈을 꾸었으니 바라건대 공주가 이루어주시오.”

 

공주가 말했다.

 

“첩 또한 꿈을 꾸어 신의 뇌사(神賚)가 없는 가 했습니다.”

 

이에 서로 부여안고 신지(神池)에 목욕하고는 묘신(廟神)에게 기도를 올리고

마침내 원앙의 아름다움을 맺으니 과연 태기가 있었다.

 

<미추味鄒(292-362)>선제(仙帝)가 이를 듣고

도산(桃山)에서 길례를 올려 부부가 될 것을 명하였다.

 

각간은 그 때 이미 쉰셋의 춘추였고 공주는 열아홉 살의 춘추였으나

구름은 짙고 비는 진하여, 정(情)이 마치 아교와 옻칠 같았으니

대개 하늘이 정한 배필이었다.

 

선제(仙帝)는 크게 기뻐하여 말하길

 

“우리 아우의 복(福)이 짐보다 백배 낫다.”

라 하며 상을 내림이 심히 많았다.

 

애초에 <달례達禮(303-371)>태후(太后)가 꿈에 금색공작(金色孔雀)을 보고서

(미추)선제(仙帝)의 딸 곧 <휴례休禮>공주를 낳았다.

 

<술례述禮(256-338)>태후는 꿈에 금색대조(金色大鳥)를 보고

미추선제(味鄒仙帝)를 낳았으니 곧 <仇道(218-301)>갈문왕(仇道葛文王)의 아들이다.

 

5년 뒤에 다시 또 하얀 큰말(白大馬)이 품에 들어오는 꿈을 꾸고서

구도왕(仇道王)에게 고하였는데 왕은 마침 병질이 있어 그 좋음(好)을 이룰 수 없자

<말흔末昕(278-350)>각간에게 명하여 이루게 하고 <말구末仇>각간을 낳았다.

 

그런고로 선제(仙帝)는 심중에 대통(大統)이 돌아갈 연고인 바를 안 것이다.

 

공주가 이미 잉태를 하자 각간은 아침마다 그를 안고 씻기는데

흰 수염(白鬚)은 새하얗게 밝고 옥체는 풍만하고 반지르르하니

 

달례태후(達禮太后)가 희롱하여 말했다.

 

“네 남편이 흰 수염을 네 배에 드리우고 너를 안으니

네가 흰 수염을 위해서 네 남편을 아끼느냐?”

 

공주가 말했다.

 

“남편은 곧 부제(父帝)의 포제(胞弟)이고 나라의 큰 기둥입니다.

비록 흰 수염이 아니라도 어찌 아끼지 않겠습니까?”

 

공주가 이에 비단주머니로 그 수염을 담아 넣고 말했다.

 

“모후(母后)가 나를 놀리니 모후로 하여금 나를 안는 것을 못 보게 하겠습니다.”

 

각간이 말했다.

 

“부모의 사랑이다. 가까이하여 보게 할 것이지 어찌 피해야 하는가?”

 

선제(仙帝)가 이를 듣고 “옳다.”하며

이에 도산(桃山)으로 들어와 제(帝)의 곁에 거처할 것을 명하고

제(帝)와 달후(達后)가 아침저녁으로 방문해서 그를 애무(愛撫)하였다.

 

금구(金狗:경술350) 3월에 이르러 (배가) 더욱 불어나자

제(帝)와 달후(達后)가 그를 위하여 친히 성모(聖母)에게 기도하고

각간 <일양日陽>에게 명하여 화림세신(花林世神)에게 참배하도록 하였다.

 

보름 뒤 초저녁에 이르러서 뇌우(雷雨)가 홀연히 일어나고

태기가 동해서 산실로 들어가니

달후(達后)가 친히 신화(神火)를 받들고 그를 어루만졌다.

 

공주가 마침내 각간의 무릎을 안고서 분만하니

서기(瑞氣)가 영롱하고 천향(天香)이 실내에 가득 찼다.

 

성자(聖子)가 고고히 태어나니

준일(俊逸)하고 영매(英邁)하였으며 보통아이와는 크게 달랐다.

 

선제(仙帝) 또한 이르렀는데 각간에게 명하여 아기를 씻게 하고

 

친히 자의(紫衣)를 내리며 말했다.

 

“오늘 비로소 용손(龍孫)을 얻으니 짐은 기쁨을 이길 수 없다.”

 

이에 나물(奈勿)이라 이름하고 노비(奴婢)를 더하고 신미(神米)를 하사하니

공주와 각간의 기쁨은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어수(魚水)와 비익(比翼)의 정(情)은 갈수록 더해지고 점점 굳어졌으며

성자(聖子)를 국양(鞠養)하는 즐거움은 하루하루 날로 깊어갔다.

 

 

 

월내신경(月嬭神經)은 달례태후(達禮太后)가 지은 것이라고 하는데

아마 월내(月嬭)와 달래(達禮)는 우리말의 ‘달래’에 해당하는 이름을

동음이사(同音異寫)한 것이 아닌 가 추측된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