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원제 28년{AD358}무오,

 

정월, <해발觧發>이 들어와서 남쪽을 정벌할 방략을 상주하며,

한산(漢山)평나(平那)에 곧바로 닿는 수곡(水谷)로를 취하자고 청하였다.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그려 설명해보이니 아주 명쾌한지라,

상은 크게 기뻐하며 <해발觧發>에게 준마와 보도를 내려주었다.

 

<양주陽疇> 등이 눈을 밟아다지면서

군사 300인으로 큰 고개{산}을 넘어서 장새진(獐塞鎮)을 함락하였다.

 

2월, 대평왕(大平王)이 아들 <소사素已>를 보내 입조하였다.

 

대평(大平)은 최체(最彘) 동남에 있는 번갈(藩鞨)인데,

북갈(北鞨)과 싸워서 북쪽의 땅을 모조리 차지하고,

스스로 태평국(太平國)이라 칭하였으며, 계림(鷄林) 백제(百濟)와 통교하였다.

 

계림(鷄林)은 딸을 주어 처로 삼게 하였다.

 

상이 이를 토벌하고자,

<방식方式>에게는 2천기를 이끌고 최체(最彘)에서 출진하게 하고,

<람국藍國>에게는 3천기를 이끌고 광남(洸南)에서 출진하게 하였더니,

<대평大平>이 두려워하며 <소사素已>를 보내 입공한 것이었다.

 

<봉화烽火>를 처로 삼아주었다.

 

6월, <해극觧克>이 수곡성(水谷城)을 쳐서 빼앗고 남녀 200인을 잡아서 돌아왔다.

 

9월, 동해(東海)태수 <부헌芙軒>이 방비를 튼튼히 하고 백성들을 도리로써 교화하고,

길을 넓히고 농토를 일구었다.

 

많은 일을 끝을 보지 못하고 죽었으니, <주일周日>이 그 일을 대신하였다.

 

 

 

 

-  장수왕의 외가(外家) 태평국(太平國)

 

 

乙弗娶太平之二女推爲獵戶之長

日以打虎爲事與樂浪交通貿易 交結豪傑 潛謀中興

於是 四方有志之士聚於其地 

- 박창화 필사본 [을불대왕전] 

 

 

<을불乙弗>은 太平의 두 딸들에게 장가들고 엽호(獵戶)의 우두머리로 추대되었다.

 

매일 무술을 연마하여 지냈으며, 낙랑과 오가며 물건을 사고팔았고,

호걸들과 서로 사귀어 은밀히 중흥을 꾀하였다.

 

이에 사방에서 뜻있는 사람들이 그 땅으로 모여들었다.

 

 

 

乃共宰鹿以祭天誓心

於是太乙獵戶土鞨合爲三徒 一心以奉乙弗 

- 박창화 필사본 [을불대왕전] 

 

이에 함께 사슴을 잡아 하늘에 제사지내고 맹서하였다.

 

그리하여 태을(太乙),엽호(獵戶), 토갈(土鞨)이 뭉쳐서 삼도(三徒)가 되었고,

한 마음으로 <을불乙弗>을 받들었다.

 

 

 

태평은 나라라고 하기보다는 작은 무리인 이들을 엽호라고 하였는데,

이 엽호가 토갈과 함께 최체의 동남쪽에 살던 갈족의 일파이며,

신라와 백제와도 통교하였다.

 

 

 

四年 甲午二月平陽生子巨連

狀皃甚偉 聲雄壯亮 開目能坐

上曰 此兒乃太祖也

仍謂后曰汝好而生此佳兒 仙不下佛也

命修仙院

-박창화 필사본 <영락대제기>

 

 

영락 4년(AD394) 갑오 2월, <평양平陽(359-414)>이 아들 <거련巨連>을 낳았다.

 

생김새가 매우 듬직하고, 목소리는 웅장하였으며, 눈을 뜨고 능히 앉을 수 있었다.

 

상이 말하길,

 

“이 아이는 곧 태조(太祖)이다.”

 

이에 황후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선(仙)을 좋아하여 이렇게 훌륭한 아이를 낳았으니,

선(仙)이 불(佛)보다 못하지 않음이다.”

 

명하여 선원(仙院) 을 수리하라 하였다.  

 

 

 

宮人白山生 王子巨連

夢有大魚飛天

王見其魁傑 而大喜曰眞龍種也

乃封白山爲公主 

- 박창화 필사본 [국강호태왕기] 

 

 

궁인 <백산白山>이 왕자 <거련巨連>을 낳았다.

 

큰 물고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꿈을 꾸었다.

 

왕이 그 뛰어남을 보고 크게 기뻐 말하기를

 

“진짜 용종이로다.”

 

이에 <백산>을 공주로 봉하였다.

 

 

영락대제기에서는 <평양平陽> 后가 장수대제 <거련>을 낳았다하고

국강호태왕기에서는 <백산白山>이 <거련>을 낳았다고 기록하였다.

 

 

 

英甞言 西山白山非骨女 不可爲后

故西山密奏 英樹黨潛圖不軌 王遂踈之 

- 박창화 필사본 [국강호태왕기] 

 

 

(영락 13년2월)(AD 403)

<해영解英>은 일찍이 <서산西山>과 <백白山산>은 골녀가 아니니

后가 될 수 없다 하였다.

 

그리하여 <서산西山>이 은밀히 아뢰기를

<해영解英>이 무리를 모아 몰래 불궤를 꾀한다고 하였더니,

왕이 마침내 그를 멀리하였다.

 

 

 

四月 以榻太子爲嗣太子巨連爲亞太子

巨連辭以母微

王曰 汝年最長而孝友可以托大事

汝弟雖弱 汝能輔之則朕何憂乎 

- 박창화 필사본[국강호태왕기] 

 

 

(영락 19년)(AD409)

4월, <탑榻> 태자를 사태자(嗣太子)로, <거련巨連>을 아태자(亞太子)로 삼았다.

 

<거련巨連>은 어머니가 미천하다 하여 사양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네가 나이가 가장 많고 효성과 우애가 깊으니 큰일을 능히 맡을 수 있다.

네 동생이 비록 약하여도 네가 능히 보좌할 수 있으니 짐이 무슨 걱정이겠느냐?”

 

 

 

十一月 東海太守達都 殺太平王子欻柯

先是 太平王欲以其女 嫁新羅王子 使其庶兄欻柯 送之

欻柯素與其妹相慕 因與逃至東海

達都見其美而奪之 以欻柯爲奴

欻柯密謂其妹曰 辱而生不若死

妹曰 妾已娠兄子在腹 不可死

欻柯乃自刎而死 其墓不生草 

- 박창화 필사본 [소수림왕기]

 

 

(소수림 4년, 374)

11월, 동해(東海)태수 <달도達都>가 태평 왕자 <훌가欻柯>를 살해하였다.

 

앞서 태평왕은 그 딸을 신라 왕자에게 시집보내고자 하여,

그 서형(庶兄) <훌가欻柯>를 시켜 그녀를 데리고 가게 하였다. 

 

<훌가欻柯>가 평소 그 누이동생과 서로 좋아하였기에

같이 도망하여 동해(東海)에 이르렀는데,

<달도達都>가 아름다운 그녀를 보자 그녀를 빼앗고 <훌가欻柯>를 노비로 삼았다.

 

<훌가欻柯>가 몰래 누이에게 말하기를

 

“욕을 보며 살기보다 차라리 죽자.”

 

누이가 말하기를

 

“첩은 이미 오라버니의 자식을 뱃속에 품고 있으니 죽을 수가 없습니다.”

 

<훌가欻柯>가 이에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는데 그 묘에는 풀이나지 않았다.

 

 

 

十二月 解克 以其嬖姬 太平王女西山 獻于王

先是 克巡西北 至東海 聞達都得欻柯妹 而欲見之 達都匿而不出

及獵于西山之下 逐獐至其隱舍 相見大喜 遂誅達都而載皈

至是 有娠 克知王之無實子 諱而獻之

王大悅 納于太后宮 爲太后養女 名曰西山公主

- 박창화 필사본 [소수림왕기] 

 

 

(소수림 6년, 376)

12월, <해극解克>이 그의 폐희(嬖姬)인 태평왕의 딸 <서산西山>을 왕에게 바쳤다.

 

이전에 <해극解克>이 서북을 돌아보다가 동해(東海)에 이르렀는데,

<달도達都>가 <훌가欻柯>의 누이를 얻었다 들었기에 그녀를 보고자 하였으나,

<달도達都>가 숨어서 나오지 않았다.

 

마침 서산(西山) 아래에서 사냥을 하던

노루를 쫒다가 그 은닉처에 도달하게 되었고,

서로 만나자 크게 기뻐하여 마침내 <달도達都>를 죽이고 그녀를 데리고 돌아왔다.

 

이때에 임신을 하고 있었는데

<해극解克>이 왕이 친아들이 없음을 알고 (임신을) 숨기고 그녀를 바쳤다.

 

왕이 크게 기뻐하며 태후궁에 보내어

태후의 양녀로 삼고 부르기를 <서산西山>공주라 하였다.

 

 

 

 

<서산西山>이 낳은 <훌가欻柯>의 딸이 <백산白山>이다.

 

그 <백산白山>영락대제기에서는 <평양平陽 (359-414)>이라 기록하고 있다.

 

<서산西山>은 임신을 숨기고 소수림제에게 바쳐진 것이며,

그녀가 낳은 <훌가欻柯>의 딸 <백산白山>이 소수림제의 딸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고구려 조정은 여전히 그녀를 태평국 출신이라

골품이 없다고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백산白山>과 <담덕談德(374-412)>사이에서 난 공주가 胡連(391-463)이고

<백산白山>과 <담덕談德(374-412)>의 동생 <용덕勇德(377-457)>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장수대제 <거련巨連(394-492)>이다.

 

<백산白山>이 소후(小后)가 된 것은 396년 왕자 합(柙)을 낳고서이고,

후(后)가 된 것은 403년 왕자 <호瑚>를 낳고서이다.

 

마침내 고구려의 변방 소국의 왕녀가 대 고구려국의 황후가 된 것이다.

 

낙랑국 경계에 있던 조그만 소국 태평국의 왕자 <훌가欻柯>와 공주<서산西山>

서로 사랑하여  신라 왕자와의 결혼을 거부하고,

달아난 곳이 고구려의 변방 동해(東海)였고

고구려 20대 천자이신 장수대제의 피에는,

남쪽의 조그마한 소국인 태평국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태평국>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