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원제39년{AD369}토사(기사),

 

정월, 백제가 이진성(伊珍城)을 되빼앗아 갔고, 우리의 군사들도 많이 상하였다.

 

최체(最彘)태수 <우눌于訥>이 상장(上将)으로서

<선극仙克>보다 못해 실기하여 패하였다.

 

이에 상이 노하여 <우눌于訥>을 불러들이고 <람풍藍豊>으로 대신하게 하였다.

 

백제는 승승하면서, 고개에서 군사를 수를 늘려서, 곧 수곡성을 탈취할 참이었다.

 

백제의 장수 <막고해莫古觧>는 용병을 잘하고 사졸들의 마음도 얻고 있었는데,

아군은 힘씀에 하릴없었고 싸울 뜻도 없었었다.

 

5월, 백제가 진격하여 수곡성(水谷城)을 깨뜨렸다.

 

당시 백제군은 분기탱천하였었다.

 

자신들의 태자 <대구수大仇首>가 선봉이 되어 진영을 이끌었으니,

사졸들 모두는 죽기로 싸우길 원하면서, 말하길;

 

“태자께서 상시 이러하시거늘 우리들은 어찌해야 하겠는가!”

라고들 하였었다.

 

상이 이 소문을 듣고는 친히 싸움에 나서기로 결심하고는,

태보 <우신于莘>이 말려도, 듣지 않았다.

 

사위군(四衛軍) 2만을 추가로 발동하여 남쪽으로 내려가

대암산(大岩山)을 거점으로 삼고,

치양(雉壤)으로 나아가서 진영을 차리고, 북한산(北漢山)을 포위하였더니,

적들은 대적하지 못하고는 성을 비우고 물러갔다.

 

이에 아군은 승승하여 멀리 있는 이진천(伊珍川)에 이르렀다.

 

{여름이어서} 날씨는 무덥고 산 속엔 등에·뱀·호랑이·범 들이 많았으며,

양군 모두에 돌림병이 돌았기에,

끝내는 산 밑에서 진을 치고는 초략하며 대치하며 가을이 되길 기다렸다.

 

9월, 적들이 해로로 군사를 보충하고는 치양(雉壤)을 습격하였다.

 

이때 아군은 병이 크게 돌아 죽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데다가 호랑이 피해도 많았다.

 

이에 상은 날래고 건장한 이들을 가려 뽑아서 호랑이를 산으로 쫒아냈다.

 

적군은 아군이 지친 것을 알아차리고는 새로 온 정예군으로 갑자기 쳐서나오니,

우리 군은 크게 무너졌다.

 

상은 단기로 무산(撫山)으로 피해 들어갔다.

 

날씨까지 비가 그치지 않으니 갑자기 겨울같이 추워졌고 많은 사졸들이 상하였다.

 

이에 상은 좌우를 돌아보며;

 

“짐이 부덕하여, 태보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 이렇게 패하였소.”

라 이르고는,

하는 수 없이 군사를 돌리라 명하였다.

 

10월, 낙랑공(楽浪公)<주영周榮>이 치양(雉壤)에서 종군하였다가 병이 들어 죽으니,

상은 그의 충성에 감사하며 후하게 묻어주었다.

 

그의 처 <현능玄能>은 아직 젊어서 점선(秥蝉)태수에게 개가하도록 하였다.

 

<강오충杠烏忠>을 태보로, <우신于莘>을 대방공(帶方公)으로 삼았다.

 

 

근초고24년(369년)

 

가을 9월, 고구려왕 사유가 보병과 기병 2만 명을 거느리고 치양에 와서 주둔하며

군사를 시켜 민가를 약탈하였다.

 

왕이 태자에게 군사를 주어,

지름길로 치양에 이르러서 불시에 공격하여 그들을 격파하고,

적병 5천여 명의 머리를 베었다.

 

노획한 물품은 장병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겨울 11월, 한수 남쪽에서 대대적으로 군사를 사열하였다.

모두 황색의 깃발을 사용하였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대륙백제에서 일어난 전투이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