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림왕 7년(A.D.370) 백마(白馬=庚午)

 

9월에 또 대지진이 있어 집이 무너지고 다친 사람이 매우 많았다.

 

난언(亂言)이 다시 크게 일어나자 왕이 사직하고자 애썼다.

 

신후가 말하기를

 

“짐이 너를 남편으로 삼고자 하는데, 어찌 난언(亂言)에 (마음을) 움직이느냐?”

라고 하였다.

 

이에 왕을 천거하여 부군으로 삼았다.

 

<접황蝶皇>의 형부 <급리急利>를 왕을 대신하여 이벌찬으로 삼고,

<소황素皇>을 품주로 삼아 정사를 행하였다.

 

이때부터 대권(大權, 국가를 통치하는 권한)이 왕에게 돌아왔다.

 

사람들은 감히 난언(亂言)을 하지 않았다.

 

왕이 <강세康世>의 딸 <천강千康>을 부여(夫余)태자 <길회吉湏>에게 시집보내고,

<급리急利>의 딸 <수황水皇>을 왜(倭) 태자에게 시집보냈다.

 

먼 나라는 유화하고 가까운 나라는 달래기 위해서다.

 

왕이 기뻐하지 아니하며 물러나기를 청하였다.

 

神后가 이에 <기림基臨(330-372)>帝에게 양위하도록 하였는데,

<기림>이 노하여 <예생禮生>궁(宮)에 머무르면서 后와 함께 하지 않았다.

 

서로 본지가 수개월이 지났는데 백마제(白馬祭)를 즈음하여 만나게 되었다.

 

태사(太史)가 여쭈어 말하기를

 

“별이 변하고 있다. 마땅히 새로운 왕으로 고쳐야 한다.”라고 하였다.

 

이에 왕을 맞이하여 계부(繼夫)로 삼고, 명궁(明宮)에서 즉위하였다.

 

나라 사람들이 기뻐하지 않음이 줄어들게 되었다.

 

모송가(慕頌歌)가 하늘에 이어지고,

후(后, 광명)와 왕이 밤에 신루(神樓)에 올라 노래를 바친 노인 12명에게 상을 내렸다.

 

모두 모우(母牛)를 하사 받고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명으로 신우(神牛)를 살펴,

왕우(王牛) 자모(雌牡, 암컷과 수컷)를 누렇게 칠하여 장식하고,

고깔모양의 뿔을 가진 왕우는 도산(桃山)으로 보내게 하였다.

 

신례(新禮, 새해의 예절, 새로운 예절)로 백성들에게 내려주었다.

 

왕은 원상(元上)帝 <우로于老>태자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조분助賁>왕의 딸 <명원命元>궁주다.

 

<명원>궁주는 처음에 <첨해沾解>제의 권처가 되어 <백해白海>궁주를 낳았고,

<미추味鄒>帝가 즉위하자 <우로>태자에게 하가(下嫁)하였다.

 

꿈에 대록(大鹿, 큰 사슴)을 보고 왕을 낳았는데, 어머니의 뱃속에 15달을 있었다.

 

상모(狀皃, 얼굴의 생김새)가 준이(俊異)하며, 담략(膽畧)이 있었다.

 

<미추>선제가 일찍이 무릎위에 앉히고 제후(諸侯)들과 조회를 보았는데,

관모를 바로하지 않는 자를 보고 가리켜서 바로하게 하였다.

 

선제가 <아이혜阿爾兮> 천후(天后)를 돌아보며 일러 말하기를

 

“이 아이는 반드시 우리집안을 일으킬 것이다.”라고 하였다.

 

태어나서 겨우 3살 때 <우로>태자가 나라를 위하여 죽으니

선제가 가엽게 여겨 자신의 아들로 기르니, <기림基臨>제와 같이 궁중에서 컸다.

 

<광명光明>천후는 왕보다 5살 연상이고, 기림제는 1살 연하였다.

 

왕은 어머니가 하는 일은 모두 공경하게 섬겼다.

 

<광명>이 예절을 앎을 사랑하여 총행(寵幸)하고 외사(外事)를 위임함이 많았다.

 

<기림>帝와 더불어 좌우보신(左右輔臣)으로 삼았다.

 

<광명>后가 아이혜를 대신하여 진골정통(眞骨正統)을 승계하자

정사를 총괄하여 집정함으로써,

왕이 유악(帷幄, 참모, 謀臣)으로 들어와

대정(大政)에 참획(參劃, 계획에 참여함)하였다.

 

<광명>은 왕이 <기림>보다 나이가 많으므로, 먼저 왕으로 세우고자 하였다.

 

<아이혜>의 의중이 <기림>에게 있으므로 어려워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신은 용재(龍才)가 아닙니다.

성심(聖心)을 힘들게 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다.

 

<광명>이 현명하다 하여 이에 <기림>을 부군(副君)으로 삼았다.

 

<아이혜>后가 죽음에 이르자 <광명>이 <유례儒禮>에게 선위하여 물러나기를 권하여,

<기림>을 세웠다.

 

<기림>은 후(后)의 뜻이 왕에게 있음을 알고 왕을 끌어 부군으로 삼고,

누차로 선위하여 물러나고자 하였다.

 

왕이 고사(固辭)하자, <광명>이 화를 내어 말하기를

 

“짐은 너와 함께 조상의 사당을 알현하기를 원한 지 오래인데,

너는 어찌 불충함이 심(甚)하느냐?”라고 하였다.

 

왕이 부득이 선양을 받아들였는데,

곧 백마의 수레가 내려온 날(白馬之車日, 5월5일)이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