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림제2년{AD372}임신,

 

6월, 진(秦) 왕 <부견苻堅>이 승려 <순도順道>를 보내와서

상이 교외에서 맞이하였으며, 객사를 만들어 그를 대접하였다.

 

<순도順道>가 아뢰길;

 

“진(秦)은 불도로 인하여 흥하였으며, 연(燕)은 선도로 인하여 망하였습니다.

폐하 역시 불법을 받들고 믿고 계신즉 천하의 왕을 할 만 하십니다.”

라 하였더니,

 

상께서 이르시길;

 

“신선(神仙)은 조종(祖宗)들께서 받드셨기 때문이며,

불력(佛力) 또한 넓고 크니 섬길 만 한 것이오.”

라 하고는 <순도>를 왕사로 삼았으며,

종실의 자녀들에게는 불경을 받아들이게 하였다.

 

이 시절, <부견苻堅>이 연(燕)을 멸하고

<준儁>의 아들 <청하淸河>와 <충이冲二>를 취하여 마냥 아꼈더니만

<진津>의 딸 <초草>씨가 딸을 낳았다.

 

<견堅>은 호색하는지라, 우리나라에 미녀가 많다는 소릴 듣고,

불상과 불경을 보내고는 청혼하였다.

 

상은 이에 <해명觧明>을 빈부(賓部)의 대형(大兄)으로 삼아

<조배祖背> 및 <환지桓芝>와 함께 진(秦)에 가서 사례하게 하였다.

 

9월, <순도順道>가 상에게 말씀 올리길;

 

“신이 폐하의 나라를 돌아보았더니, 무를 숭상하고 귀신 섬기길 좋아하였으며,

지체 낮은 백성들은 우매하였고, 대부들은 황음하였습니다.

대학(大學)을 세우시어 문자와 예의를 가르치시길 청합니다.”

라 하였다.

 

상이 태후와 이를 상의하였는데, 종척들 대다수는 이를 불편하게 여기었다.

 

상은 <부견苻堅>이 전한 것이라 잠시 시험해 보라 하였다.

 

신라는 가뭄이 들어 굶주렸는데 나누어주는 것이 모자라서

많은 백성이 우리에게 귀의하였다.

 

백제의 <근초고>가 진(晋)과 통교하였다.

 

 

 

堅滅慕容暐 以其妹淸河公主及弟冲爲嬖倖 而欲振其威 而遣使諭之

群臣多以爲佛非吾道不可迎之 太后畏秦强而迎奉之

 - 박창화 필사본 <소수림왕기> 

 

 

<부견>이 <모용위>를 멸하고 그 누이 <청하>공주와 동생 <충冲>을 패행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 위엄을 떨치고자하여 사신을 보내 (불교를)깨닫게 하였다.

 

군신 다수가 불(佛)은 우리의 도가 아니니 맞아들일 수 없다 하였지만,

태후는 진(秦)의 강함을 두려워하여 그를 환영하여 떠받들었다.

 

 

 

以象院爲肖門寺 順道法之

蔵胎爲伊弗蘭寺 阿道法之

上厭王師封太,折益等 淫乱後宮

以外來之佛 主此大院以示淸淨可法 仙人大駭

- 박창화 필사본 <소수림대제기>

 

                                    

(AD375)

상원(象院)을 초문사(肖門寺)로 하여 <순도順道>가 법이 되게 하고,

장태(蔵胎)는 이불란사(伊弗蘭寺)로 하여 <아도阿道>가 법이 되게 하였다.

 

상이 왕사(王師) <봉태封太>, <절익折益>등이 후궁을 음란하게 하는 것을 싫어하였다.

 

밖에서 들어온 불교로 이 대원(大院)들의 우두머리가 되게 하여,

맑고 깨끗함을 보여 가히 모범이 되게 하니 선인(仙人)들이 크게 놀랐다.

  

 

 

五年 二月改象院爲肖門寺 以順道爲法¹

胎蔵爲伊弗蘭寺 以阿道爲法 掌祭祀祈禱 選子弟爲佛弟子

先是 吉凶之禮 皆用仙巫

至是 始令順道送死²阿道養生³ 而奉之尙少故命宗親子弟入佛

- 박창화 필사본 <소수림왕기>

  

 

5년 2월, 상원(象院)을 초문사(肖門寺)로 바꾸어 <순도順道>를 으로 삼고,

태장(胎蔵)을 이불란사(伊弗蘭寺)로 하여 <아도阿道>가 法이 되어,

제사와 기도를 담당하고 자제들을 선발하여 불제자로 삼았다.

 

앞서 길흉의 의식(儀式)은 모두 선무를 이용하였으나,

이때에 이르러 처음으로 <순도>가 送事의 일을, <아도>가 養生의 일을 하게하였다.

그러나 불(佛)을 받드는 것이 오히려 줄어들었기에,

종친자제에 명하여 불교를 받아들이라 하였다.

  

 

※ 참고

 

法 : 여기서는 대원의 우두머리를 말한다. 주(主)와 같은 의미이다.

送死 : 임종을 지켜주는 일

養生 : 출산을 축복하는 일

 

 

 

천존(天尊)사상인 선(仙)은 북방 유목민의 사유(思維)를 지배하는 사상이다.

인존(人尊)사상인 홍익인간은 해상세력인 동이족의 사유(思維)를 지배하는 사상이다.

지존(地尊)사상인 유교는 농업민족인 회화족의 사유(思維)를 지배하는 사상이다.

 

이것이 고대 동북아시아에 사는 사람들 사유(思維)의 큰 흐름이었다.

 

티베트 지역에서 발흥하여 중원으로 진출한 前秦은

불교를 국교로 하여 주변국을 통합코자 하였다. 

 

소수림대제가 불교를 받아들인 까닭은

당시 중원의 힘이 전진(前秦)에게 있었기 때문에 마지못해 받아들인 것이다.

 

소수림대제가 등극할 즈음 전진의 부견은 燕을 패망시키고

중원의 새로운 강자로 등장하던 시기였다.

 

그리고 그 부견은 자신의 위상을 과시하기위해

주변국에게 불교를 강요하기 시작하였다.

 

<부견>의 눈치를 살펴 어쩔 수 없이 불교를 받아들이기는 하였으나

사람의 생각은 그리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어서 다들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解 태후는 과거 모용황에게 치욕을 당한 경험이 있는 여인이었다.

 

아마도 다시는 국난을 겪기 싫었던 까닭에,

대신들과 백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불교를 허용한 것으로 보인다. 

 

소수림제는 부여시절부터 내려오던 仙敎가 그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고

선인들이 후궁들을 어지럽히는 일이 자주 발생하였으므로 불교를 적극 권장하게된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