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림제3년{AD373}계유,
백제의 독산성주(禿山城主)가 그의 무리 300인을 이끌고 신라에 투항하였더니,
백제는 “서로 간에 잘 지내자는 도리가 이러한 것이더냐!”라 하였고,
신라는 “스스로 반성은 아니 하고, 오히려 다른 사람을 탓하는가!”라 하였다.
두 나라 간에 불만이 있게 되었다.
이 해에 백제는 <진{東晋}>과 통교하더니 청목령(靑木岺)에 성을 쌓았다.
근초고28년(373년)
봄 2월, 진(晋) 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가을 7월, 청목령에 성을 쌓았다.
독산 성주가 주민 3백 명을 거느리고 신라로 도망갔다.
흘해왕 4년(A.D.373) 흑계(黑鷄=癸酉)
10월 고구려가 신령(新令)을 행하여 형벌을 감형하고,
죽일 죄인 700명을 남쪽 시골로 옮겼다.
쇠(釗, 고국원왕)가 백제에게 죽임을 당하여
그런 연유로 구부(丘夫, 소수림왕)가 원수를 갚고자 하였으며,
백성의 고통을 살피고 또 수차례 우리에게 아첨하였다.
변방의 장수를 은밀히 보내어 소, 술, 미녀를 보냈는데 모두 거부하며 받지 않았다.
이 시절 고구려와 백제, 신라는 서로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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