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물왕 3년(A.D.379) 기묘(己卯)

 

2월 당시 <발강發康>의 누나 아이(阿尒)가 근수(謹須, 근구수왕)의 처가 되었는데

그 나라의 정사를 오로지 하였다.

 

그의 모형(母兄)을 맞이하여 데려갔고,

이때에 이르러 또 <공태公兌>를 청하여 진(眞)을 베풀고자 하니,

그런 연유로 허락하였다.

 

<공태公兌>는 부여에는 의원이 많다고 하며 <선해宣亥>를 천거하여 데리고 갔다.

 

4월 왜병이 크게 이르러 <등억登檍>과 <내개乃芥>에게 막도록 하였다.

 

풀로 허수아비 수천을 토함산(吐含山)에 아래에 만들어 놓고,

용사 1천명을 부현(斧峴) 동쪽 벌판에 매복하였다.

 

왜가 마침내 계산하는 대로 걸려들어 크게 패하였다. 추격하여 모두 사로잡았다.

 

이때부터 왜와 가야(加耶)가 상통하여 해마다 와서 구하였다.

 

 

한반도 남부 해상세력인 왜와 가야가 연합하여 신라를 침공한 것이다

 

 

7월 진(秦)나라 사람 <부량符良> 등 7인이 표류하여 이르렀다.

 

 

 

내물왕 9년(364년)

 

4월, 왜병의 대부대가 공격해왔다.

 

왕이 이를 듣고 대적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풀로 허수아비 수천 개를 만들어 옷을 입히고,

옷을 입힌 허수아비마다 병기를 들게 하여 토함산 아래에 열 지어 세워놓고,

용사 1천 명을 부현 동쪽 벌판에 매복시켰다.

 

왜인은 자신의 병력이 많은 것을 믿고 곧장 진격해왔다.

 

복병들이 갑자기 공격하여 허를 찌르니, 왜인이 대패하여 도주하였다.

 

우리 군사가 추격하여 거의 모두 죽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