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물왕 4년(A.D.380)

 

정월, 4월 백성을 골라 뽑았다.

 

무예가 특출하거나, 겁주는 힘이 보통사람을 넘거나, 특이한 재주가 자랑할 만하거나,

귀신같이 숙련된 기술자를 일러 4과(四科)라 한다.

 

알맞은 사람을 천거하여 쓰이게 한 자 또한 칭찬하고 상을 내렸다.

 

거인임재지법(擧人任才之法)은 골(骨), 선(仙), 리(吏) 예(隸) 중에서 임명하게 되었다.

 

그런 연유로 하민(下民)들 중에 유능한 자는 누락됨이 많거나 뽑지 않았다.

 

비록 혹시 뽑더라도 모두 예문(隸門)에 속하게 하였다.

 

그런 연유로 그 이바지함을 맡으려하지 않았다.

 

혹은 재주를 숨기고 옹졸하게 나타내어 나라를 위해 쓰임을 수긍하지 않았다.

 

그런 연유로 <세기世己>가 누차로 골문(骨門)과 의논하여 이때에 이르러 결단하였다.

 

당시 품주 촌씨(村氏)는 북화(北花)에서 나왔는데,

그녀의 오빠 <치각治角>이 재주가 있었으나 각전(角典)의 노예여서 뽑히지 않았다.

 

그런 연유로 촌씨가 <세기世己>를 독촉하여 골문을 누르고,

침석에서 왕에게 말하여 이루어낸 것이다.

 

환씨(環氏), 비씨(狒氏), 미씨(米氏) 등은 오화(吳花)로 품주가 되었다고 비록 말하나,

골품이 없고 또한 모두 비위(緋位)에 있었던 자이며,

촌씨는 비위(緋位)를 지나지 않고 곧바로 천위(茜位)로 들어왔다.

 

그의 오빠를 뽑아 사지(舍知, 신라관등의 13번째)로 삼았다.

 

하민(下民)들이 서로 축하하며 말하기를

 

“딸을 낳는다면 촌씨와 같아야 마땅하다.”

라고 하였다.

 

북화에서는 지극하게도 상(象)을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는 자도 있었다.

 

 

 

 

Posted by 띨빡